무의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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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지점 밑줄긋기 (사랑의 은유)

라캉에게 있어서 사랑의 가장 순간은 사랑받는 자가 사랑의 은유를 실연할 때, 즉 그가 사랑받는 대상의 자리를 사랑하는 자의 자리로 대체하고 지금까지 사랑하는 자가 행했던 거과 동일한 방식으로 행위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요켠대 그 순간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제공함으로써 사랑을 되돌려줄 때 발생한다. 사랑하는 것은, 즉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자는 누구이며 사랑받는 자는 누구인가? - P55 사랑하는 자는 무언가를 결여하고 있다. 그는 결여의 주체이며, 욕망하는 주체이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반면에 사랑받는 자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타자의 눈에 ..

review 2023.06.14

응시의 선재성

의식활동 지평으로서의 신체 먼저 메를로퐁티는 의식은 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닌 충만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주장하며, 이에 전제는 바로 우리의 신체이다. 특히 의식, 의식의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은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추상적인 한 지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때문에 상대화된 국지적인 지점에 놓여있을 뿐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국지적인 지점을 놓여서 상대적인 관점, 제한된 관점에서 의식 활동을 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논점이다. 메를로퐁티의 신체는 라깡의 실재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이는데, 라깡의 실재는 '의미가 주어지지 않은 사물로서의 신체'이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우리의 신체에 의해서 세계에 존재하는 한, 우리의 신체로 세계를 지각하는 한, 세..

상실의 발명

우리의 욕망은 상실에 대한 일종의 은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은 상실은 의미를 빠져나가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욕망을 추구한다해도 그 욕망의 속성은 텅비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의 기표는 기표일 뿐 우리의 상실을 보상할 만한 충만함은 없기 때문이다. 잉여향유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피가 식는다. 열정의 연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신분석의 애초의 가정인 " 우리는 잃어버렸다!" 그 침통함이 우리의 삶의 기름이라는 아이러니.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나는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할까? 주이상스라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무의식만 기억하고 있는 것, 그 것. 라깡 정신분석의 특이점인 양면성, 억압이 없으면 충동이 없다는 역설은 언어가 없으면 주이상스도 없다..

cartel 2023.06.14

라깡 세미나 7을 읽는 다는 것

세미나 7의 의미 2020.8.14 라깡의 숲 재작년 라깡세미나와 교육분석을 동시에 시작하면서 꿨던 꿈이 있다. 기억나는 대로 잠깐 옮기면 나는 나의 아들과 함께 째즈가 들리는 반지하 까페로 들어간다. 머리를 묶은 작곡가가 앉아있다. 나는 그와 음악이야기를 나눈다. 흰 가운 의사들과 함께 나는 수업을 듣는다. 그들은 가짜라고 작곡가에게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 절벽에 70도의 각도로 뻗어있는 나무들과 화려한 바위를 가진 엄청난 규모의 절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 쉬운 클리셰로 범벅되어 해석도 쉽다. 작곡가는 분석가이고,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반지하 그리고 안다고 가정된 주체들인 가짜 의사들. 화려한 절벽은 이 라깡 학문이 나에게 화려한 지적 환상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

cartel 2023.06.09

쾌락원칙과 반복강박

쾌락원칙과 반복강박 - 쾌락원칙을 너머 (2023.6.9.) 우리는 대부분 긴장은 해소하고, 흥분은 가라앉히려고 한다. 지나친 긴장과 흥분상태는 우리에게 불쾌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정신은 두 가지 원칙,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에 의해 규제 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쾌락과 불쾌를 마음속에 존재하나 어떤방식으로도 않은 흥분의 양’과 연결시켰다. 즉, 쾌락은 흥분의 감소이고, 불쾌는 흥분의 증가이다. 프로이트는 페히너의 가설에 따라 우리의 신체는 완벽한 안정성에 접근해 가면 쾌감을 수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지배하에 항상 안정된 상태로 살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전쟁 후에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두 원칙에 벗어나서 불쾌를 반복하고 있는 증상에 주목하면서 쾌락..

cartel 2023.06.09

프로이트 나르시시즘

나르시시스트는 흔히 ‘자기애’가 많은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성격장애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 같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자기중심적 성격과 행동을 보이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항상 자기애에 빠져있는 것 같지는 않다. 상대적인 비교 속에서 자신에 대해 곤두박질 치는 경우도 있다. 또, 나르시시즘이 심한 경우는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심리적 태도는 프로이트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르시시즘에 관한 연구는 「편집증 환자 슈레버」의 세 번째 장과 「토템과 터부」 세 번째 장..

cartel 2023.06.05

사후구성된 어떤 철자교본(에크리)

사후 구성된 어떤 철자 교본 전정계 이상 나의 병명이다. 그리고 숨겨진 병명은 뇌진탕이다. 뇌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내가 공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끊임없이 나는 새로운 정보 속에 잠겨있다. 어쩌면 지식을 구하는 나의 방식이 문제였던걸까? 한 번에 깊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a와 비슷한 a'를 기억하고 연결하는 과정 안에서 a에 대한 지식을 불현듯 경험한다. a를 깊게 사유하는 것은 응시 속 자괴감이(왜 이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가!) 함께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a의 주변을 탐색하거나, 전혀 다른 b를 경험하면서 a에 대한 지식이 드러나길 바라는 얌체 같..

cartel 2023.06.05

라가쉬의 정신분석과 퍼스낼리티의 구조 (에크리)

주체의 자리 2022.9.17. 주체의 구조는 곧 시니피앙의 구조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앙의 사이에 주체라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았을 때, 하나의 시니피앙과 다른 시니피앙의 관계성이 주체의 구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라가쉬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가 짐작으로만 알 뿐 왜 라깡의 의도 역시 명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다. 이런 불편함. 1년이 넘도록 이런 불편함을 견디고 붙들고 있다. 그냥 무의식에 새겨지기를 그럼 적어도, 팔루스의 방향으로 향하는 관성이 좀 견제되지 않을까 하고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심적, 신체적 불편함을 견디어야 하는 공부의 과정은 어쩌면 다른 불편함(팔루스)을 견디어 왔던 히스테리자의 증상의 전개이자, 잉여향유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진리추구..

cartel 2023.06.05

무의식은 반복 (나지오강의 중)

나지오는 '우리의 현실은 무의식의 반복운동' 속에 있다고 말한다.. - 반복의 숨겨진 의미를 찾는것. - 분석가는 내담자의 슬픔의 최초의 표시가 나타난 순간과 정황 을 아는 것.(증상의 첫 출현) 우리 머리에서 의미를 찾아 내지 못한 것은 언제나 행동으로 되돌아 온다 증상의 역사를 탐사는 하는 것은 분석의 과정이다. 주체의 진실이란, 주체를 내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주체의 기대나 잘 다듬어진 관념이기보다는 반복되는 증상입니다.(13) 증상이 표현하는 환상을 분석가는 발견하기도 한다. 분석가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반복과 관련된 두 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 번째 원칙 : 증상의 최초 출현과 그 반복 두 번째 원칙 : 증상의 의미 구축 – 근본환상의 구성 ; 환자가 ..

왜상

라깡은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출간에 따라 시관적 기능 역시 반복에 관한 설명의 일부라고 여긴다. 거기에 어떤 만남이 있다면, 이는 의식을 무의식의 관점에서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는지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담화 자체에서 의식의 사태란 무엇인가? 라깡은 어느 정도의 음영, 혹은 무착색 부분에 의해 각인된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에게 의식은 착색되지 않는 부분, 즉 무의식에 의해 착색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 분석이 밝혀낸 심리적 발달에 관한 모든 개념에서 ‘투케적인’ 사태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눈, 절호의 만남, 불길한 만남 등에 관한 것. 1. 127P 젊은 파르크는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표상관의 관계 속에서 의식의 본질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