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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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의 이면

정신분석은 관념론이 아니다. 큰 사물을 둘러싼 환상, 상징화될 수 없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 한계 밖의 영역에 대해 공백에 대한 환상은 팔루스의 환상보다 위태롭다. 자칫 낭만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고 생각했던 유체이탈과 죽은 死者들이 방문하여 내게 말을 걸었던 꿈의 일들. 환청과 환시들에 대한 개인의 신화가 마치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낭만주의적으로 필자는 가정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의 망상들은 인간의 꿈들이 비슷비슷한 것과 같이 그 실체를 인간이 과학으로 밝히지 못할 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내가 경험한 다른 영역의 보편적인 증거를 찾거나, 만약 그 망상성이 비정상이라면 그 증상의 이름이라도 찾아야만 했다...

cartel 2023.06.01

8장 잉여향락이 잉여가치를 만날 때

잉여향락, 우리는 잉여향유라고 불러왔다. 알렌카 주판치치가 라깡이 시니피앙과 향락을 개념적으로 어떻게 연결하는지, 잉여향유가 어떻게 도출되었는가와 관련되어 있는지가 규명하는 것이 이번 논문의 주제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주인담화, 히스테리담화, 대학담화를 통해서 시니피앙과 잉여향유의 관계를 어떻게 볼 수 있는지 규명하고 있다. 알렌카 주판치치는 시니피앙과 향락관의 관계에서 라깡의 담론은 획기적인 답변이라고 서두를 시작한다. 그럼 이전 시니피앙과 향락의 관계는 어떠한가? 라깡의 인간학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자끄 알렝밀래는 주이상스의 변화를 6개의 패러다임으로 나눈다. 첫 번째 패러다임은 상징계와 상상계의 대립으로 기표와 주이상스는 대립된다. 두 번째 패러다임은 ‘주이상스의 기표화 ’ 즉 상상적 주이상스에..

cartel 2023.05.31

무의식과 향락(나지오의 7가지 정신분석 근본개념 )

무의식과 향락 무의식이 시니피앙의 연쇄라면 이 연쇄 안에는 향락의 요소가 빠져있다고 나지오는 말한다. “무의식에서 향락은 시니피앙적 표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멍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구멍은 “환상들과 증상에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다. 시니피앙의 연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전제로 했을 때, 향락은 빠져있다고 나지오는 말하는 것이다. 향락이 시니피아의 연쇄가 될 수 없고, 구조를 형성하는 부분이 아니라 구조 내 구멍으로 향락은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향락은 어떻게 표상되는가? 향락 그 자체는 표상될 수 없으며, 향락은 구멍을 덮고 있는 환상, 증상의 베일들로 은폐되어 있다는 것으로 향락이 어떤 자리를 차지 하고 있음을 가정할 수 ..

cartel 2023.05.31

멜랑꼴리의 검은 우물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헬러윈이 언제 인지도 모르고, 이태원에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는지도 몰랐다. 검은 머리들이 꽉찬 그 현장의 숨막힘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숨을 쉬지 않으며 몇 개의 영상을 보았다. 이제 막 20대에 들어선 젊은이들, 나의 자녀와 친구의 자녀들의 나이다. 아들의 친구의 친구가 죽거나 중상이라고 한다. 이 참담함을 아들은 견딜 길이 없어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였다. 분노를 터트린다. 무능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의 모습에 나 역시 화가 치민다. 엎어버리고 싶다. 아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애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세월호 때에는 가지 않았던 분향소를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들..

cartel 2023.05.31

환상의 원인

어떻게 보면 성인 정신분석에서 ‘근본환상’에 접근하는 과정만 잘라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이 들었다. ‘근본환상’은 하나의 시나리오이며, 욕망의 원인의 베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지오는 ‘환상의 형성에서 타대상이 어떤 기능’ 을 하고 있는지 이번 강의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타대상은 정신분석을 다른 과 구별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타대상은 정신분석실천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분석가 담화에서 분석가는 대상a의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빗금친 주체에게 ‘지식을 생산하기’를 요구한다. 그 지식은 주체가 생산하는 새로운 주인기표 S1이다. 대상a는 내담자의 욕망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욕망의 원인이 되는 분석가는 내담자의 이자관계로서의 욕망의..

cartel 2023.05.31

라깡과 정치

무능에서 불가능으로 바디우는 정신분석에서 “치료란 하나의 형식을 전제하는 동시에 그것을 가로지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그 하나의 형식은 ‘무의식의 객관적인 구조’이며, ‘치료란 그 구조들의 연관되면서 그것을 재단하고 조각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의식의 객관적인 구조란 무의식이 언어로 구조되어있다는 전제 아래 분석주체의 구조를 시니피앙의 분석과정으로 생각된다. 무의식의 분석은 일반적인 치료의 목표인 ‘회복’은 아니다. 바디우는 분석의 목표가 “주체가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서 새로이 살 수 있는 실재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분석과정을 통해 상징계와 상상계의 직조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대타자의 욕망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가로 지르는 행위에 ..

cartel 2023.05.31

질투의 뿌리

타자의 주이상스 그녀가 정신분석가에게 찾아갔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질투 망상이였다. 그것이 어떻게 촉발했는지 그 기원을 찾아서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정신분석가를 찾아오기전 그녀가 매달렸던 환상은 파트너의 욕망의 대상이 다른 여자이고, 그 욕망은 무의식적 욕망이기에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아무리 파트너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녀는 철저히 속아왔다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이러한 망상이 망상이 아니라 진실이라면' 자신은 정상일 것이므로, 그녀는 진실을 파헤쳐 자신이 정상인지 망상병 환자인지 알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았다. 그녀는 할 수 있다면 탐정이라도 고용해서 그의 모든 뒤를 밟아서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기만 한다면 만족할 것 같다. 더 이상..

cartel 2023.05.25

공백, 非의미의 사수

환상의 횡단 속에서 마주치는 공백 우리는 주이상스를 상실했다와 함께 주이상스를 억압하기 위해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가정은 라깡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대전제로 간주된다. 그러나 억압된 주이상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어떻게 그것이 회귀하는가. 주이상스의 회귀는 우리 삶 속에 구멍을 통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증상' 이 그러하다. 정신분석과정에서 우리는 증상을 구성해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골몰한다. 기존의 담화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구멍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새로운 의미가 분출될 때까지 내담자는 말을 해야 한다. 라깡 정신분석이 기존의 상담과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 구멍을 기존의 지식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고리타분한 서사가 끝이 나면, 기존의 언어가 들..

cartel 2023.05.07

대타자의 부흥

대타자의 부흥 라깡은 성도착의 구조를 한마디로 말하면 '대타자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은 대타자를 살려내는 부흥의 가공을 통한 주이상스의 소환이 도착증자가 목적하는 바이다 . 도착증자가 부흥 시키려는 대타자는 상징계 대타자가 아니라, 거세이전의 빗금없는 대타자A이다. 언어의 거세이전 다형적 충동의 세계에서 유아의 신체는 쾌락이 전부인 신체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주이상스의 대상이고, 이 팔루스와 아이는 자신을 동일시 한다. 이들 사이에 아버지의 개입으로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를 쾌락하기를 멈추어야 한다. 어머니는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야 하고, 아이는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 어머니 대타자도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이면서 거세된다. 죽은 대타자가 되는..

대타자의 복화술

대타자는 말을 하고 충동은 행위(acting out)를 한다. 말과 행위의 부딪힘. 알 수 없는 반복적 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순간. 그 부딪힘의 순간이 어쩌면 무의식 주체의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끊임없는 기표연쇄는 즉, 생각은 대타자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 어떤 말도 새로운 말이 없기 때문이다. 대타자가 부여한 의미에 따라 우리는 말할 뿐이다. 대타자가 언어의 외피를 가진 일종의 환상이라면 충동은 언어를 무시한채 주체를 압박하는 힘이다. 대타자와 충동 두 측면 모두 외부의 소산이다. 대타자에 의한 거세와 충동에 의한 반복 이 두 가지로 인해 인간 주체는 소외당한다. 그러나 충동은 대타자의 결여를 공격하면서 주체를 잠금 해제시킨다. 나는 타자가 아니라, 몸을 가진 실재라는 비명으로 존재감을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