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cartel 42

시니피앙의 나무(문자라는 증서 4장)

“부유하는 두 왕국” 소쉬르의 부유하는 두 왕국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두 왕국이다. 기호의 형성은 부유하는 두 덩어리의 ‘동시적’ 절단으로 묘사" 한다.  이 동시적 절단은  관습적으로 묶인 기호의 단면이다. 라깡에게 부유하는 두 덩어리는 ‘쉼 없이 미끄러지는 것’이 관건이다. 기표도 흐르고, 기의도 흐른다. 소쉬르는 시니피앙 연쇄에 대한 시니피에 연쇄의 공존을 설정하지만, 라깡은 시니피앙의 ‘독립성과 선재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의미는 어떻게 의미화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의미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는 그만 미끄러지고 어딘가 정박해야 한다. 이 정박하는 지점이 누빔점이다.라깡은 에크리에 805쪼과 808쪽 사이의 누빔점의 그래프, 욕망의 그래프를 넣었다. ..

cartel 2024.11.22

욕망의 사후성(5장 언어적 기호의 가치와 라깡의 고정점)

“랑그란 언어 빼기 말” 소쉬르는 언어적 기호 개념을 제시한다. 언어적 기호는 사물과 단어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사고와 단절하고, 사물을 이름이 아닌 개념을 청각이미지와 결합시킨다. 청각이미지는 물질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심리적 각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소리의 대리표상’이고, 감각적이다. 소쉬르는 “랑그란 언어에서 말을 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어는 랑그와 말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적 기호는“두 측면(개념과 청각이미지)을 가진 심리적 실체”의“결합”관계를 통해 단번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개념은 기의로 청각이미지는 기표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체계는 기호의 자의성, 기호의 불변성, 기호의 변질, 기표의 선형적 성격이라는 특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위에..

cartel 2024.11.21

기호의 발골

「무의식에서의 문자의 심급 또는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은 1957년 발표되고 작성되었다. 이 당시 정신분석 학회들이 단행한 두 차례에 걸친 라깡 제명이 발생했던 시기에 위치한다. 이 시기 라깡은 정신분석 실천과 제도적인 장에서 가장 명백한 단절의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단절’이라는 기표는 이 글에서 중요하다. 라깡은 정신분석이론을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뽑아낸 기호론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라깡적 언어학을 주창’했다는 점이 반복에서 제시된다.   문자의 심급에서 정신분석의 이론화를 꾀한다. 저자들이 인용한 서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자의 심급은 대학인들에게 제시되었다. 문학은 ‘문자에 대한 라깡의 이론화’에 적합한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2. 문자의 심급은 과학적 담론, 어떤 진리에 관한 담..

cartel 2024.10.24

소외

일반적인 차원에서 소외감은 삶의 공허감과 같은 말처럼 쓰인다. 주인의 반대말 처럼도 쓰인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여 몸을  느끼는 것일까. 소외는 일종의 정동이지, 실체가 아니다.  소외의 효과로서 우리는 '자아'를 찾겠다는 일념을 지니게 된다.  언어로 거세된 존재의 분열은 '진실게임'에 들어선 것이다.타자를 치는 나의 손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다.  머리 중앙에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는 나. 나의 시선은 카메라와 스크린의 두 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열된 상황을 소외라고 싶다.

cartel 2024.09.05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는 내담자의 치료를 욕망하지 않는다. 상처는 벌려놓은 채로, 증상은 남아있다는 소리다. 정신분석이 끝나고 증상과 함께 살아가기가 가능해지지만, 새로운 증상의 출몰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쾌락의 감산이 뒤따른다.  '증상에의 향유'가 '공백에의 욕망'을 만나면  예전의 향유를 반복하기 어렵게 된다. . 환상 뒤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다른 증상을 찾는다. 어쩌면 증상의 창의적 전개가 관건인지 모르겠다.  정신분석가의 공백의 주입을 통해 내담자의 서사는 그 '신화적 힘'을 잃게 된다. 원인과 결과의 논리들은 무의식의 논리에 종속된 것을 알게되면 내담자의 인생은 달라진다. 달라진 인생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

cartel 2024.06.03

죄 없는 죄책감

나는 분석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 아마 30대에 들어서서 죄책감을 벗어던졌다고 느꼈다. 과연 이제 나는 죄책감이 없는가? 죄책감에 대한 나의 서사 20대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책감을 큰 것은 자아의 비대함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다들 고생하며 살지 않을 텐데..스스로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과도한 환상 같은 것이다. 23세에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돌연 의대에 가겠다고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특히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심했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언제나 빚을 진 자였다. 부모간의 불화와 사업실패에 따른 경제어려움, 그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한 보상을 내가 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

cartel 2024.05.03

성욕의 담지자 시니피앙

무의식의 현실은 성적이다.  라깡은 다음과 같은 경구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전이는 무의식의 현실을 현행화하는 것이다'  1라깡은 전이에 대한 분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경향의 어떤 것이 이 경구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어떤 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일 것이다. 섹슈얼리티, 성, 성적현실은 동물과 같이 ‘번식이라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인간에게는 동물의 성과 다른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인가? 라깡은 무의식이 어째서 성적 현실이고, 이 성적 현실이 시니피앙의 도입과 동시에 욕망이 생성된다는 논점이 세미나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전이가 무의식을 현행화한다는 입장, 즉 사람들이 회피하는 성과 관련된 이 문구가 자신이 그동안 가르쳐왔던 입장과 다소 애매한 것은 아닌지 라깡은..

cartel 2024.04.25

기표의 죽음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기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의 기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의 기표는 모든 인간이 쥐고 있다. 그 기표의 효과가 개별적인 것일 뿐...하나의 존재는 자신의 기표를 품고 죽는다. 그것을 알던, 알지 못하던 자신의 기표 아래서 한바탕 소동처럼 살아가다가 어느날 알려지지 않은 기표를 가지고 살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그 기표를 죽인다. 남아있는 자들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잉여기표를 생산하기도 한다. 인간의 근원적 상실감은 죽음의 잉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이상스의 상실은 죽음과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존을 담보한 주이상스가 어찌 근원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왜 주이상스, 그 무의미의 힘에 우리가 왜 지배당하는지 의아했다. 무력한 존재는 타자의 돌봄없이 살아날 수 없고..

cartel 202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