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일단 그의 우아한 취향은 정말이지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마침내' '붕괴'와 같은 기표들은 사람을 흔든다.
나는 이 영화가 히스테리증자와 강박증자가 어떻게 서로의 균열이 되는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같다.
송서래로 분한 탕웨이는 '품위있는' 박해일을 욕망한다.
박해일 역시 이유도 모르는 체 '꼿꼿한' 그녀에게 이끌린다.
꼿꼿하다는 것은 히스테리증자가 법(아버지, 가부장, 대타자)에 대한 거부의 자세이다.
박해일이 강박증자인 이유는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습니까"라는 대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머니가 많은 조끼, 벽면을 채운 사진들도 이를 방증한다. 그들은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탕웨이가 굳이 '미결'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히스테리증자는 욕망을 충족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의 욕망의 대상에서 빗겨나가 영원한 그의 증상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단어를 쓰지 않아도 충분히 그녀는 미결이 되었을 것이다
히스테리와 강박증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각본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설명하려는 욕구, 환유의 감옥에 갇혀있다.
영화를 둘러싼 상징과 해석의 교환이 한편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역시 이렇게 쓰고 있다.
각본집은 처음이였는데, 읽는 내내 읽지 않고 '보는 것'만 같았다.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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