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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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깡의 언어학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 되어 있다는 라깡의 언명은 우리의 무의식이 이미지나 충동이 아닌 언어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언어구조는 소쉬르의 기호이론을 넘어 라깡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단절을 강조하면서 시니피앙의 우위속에서 주체가 결정되는 차원을 가정하였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무의미이지만 다른 하나의 시니피앙과 연쇄되면서 의미를 도출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대타자의 장에서 선택한 시니피앙의 연쇄를 통해 뻔한 의미를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시니피앙과 시니피앙의 연쇄되는 과정에서 언어체계를 벗어난 말실수, 농담과 같은 무의식의 형성물들이 주체의 현존을 증명한다. 주체는 언어구조 속에서 드러난다고 본 것이 라깡 초기 이론인 것이다. 언어는 은유와 환유구조로 이루어져있으며, 우리의 무의식도 은유와 환유로..

대한민국의 우울적 자리

대통령의 편집-분열 자리와 대한민국의 우울적 자리  들어가는 말  처음 멜라니 클라인의 논문을 접하고 다른 논문들과 달리 그 문체가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클라인은 때로는 드라마로, 때로는 독백으로 작두를 탄 듯 글을 써내려간 것만 같았다. 마치 빙의한 것처럼 유아의 무의식을 통과하는 듯 느껴진다. 클라인은 무의식 속을 탐사하면서 이론을 전개하지만, 그것이 신비주의나, 낭만주의가 아닌 순환되는 개념 속에서 프로이트를 넘어 ‘독창적인 이론’을 말년까지 구체화하고 있었다. 특히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아동의 정신세계를 탐사하면서 그녀가 접근한 아동의 무의식 덩어리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론의 창조적 전개를 통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론적 깊이에 개인적 감동의 지점도 있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클라인..

대학원 담화 2024.12.22

2009. 11. 19 어느 날이야기, 물고있던 것들 중 몇몇은 해소가 된 셈이다.

1년이 끝나간다. 나는 마지막 4학기를 놔두고 포기한다. 애초에 내가 따라갈수 없는 것들이였지만, 그래도 마칠수 있었는데. 결국에는 포기한다. 핑계는 많지만, 핑계는 핑계일뿐. 내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해야된다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작했고, 그 한계를 계속 맛보면서 그 길을 걸었다. 내가 갈수 있을거라고, 변해야 된다고 하는 나의 절박성은 벽에 막혀서 계속 뒷걸음치는 관성을 유지한채, 나의 패턴을 반복한채, 나는 그렇게 루저가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을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간의 나의 관성으로 미루어볼때, 나는 그 자신에 실망과 실패를 부여잡고, 그 안에서 결코 나오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문제로서 나는 나의 삶을 채워가는 것이다. 이렇게 잘 알면서 나오지 않는 것은 나..

강박사회

들어가며..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항문기에 고착된 한 인물의 배변의 기표에서 동시에 미래를 앞당기는 기표가 되었다. 비상계엄이 가지고 있는 기의의 차원은 한국사회의 축적된 트라우마를 표상하고, 현직 대통령에게는 타자의 욕망을 무화시키는 기표일 것이다. 그의 극도의 불안은 극단적 액팅아웃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한편, 현대는 라캉에 따르면 잉여향락의 시대이다. 이에 따라 역설적으로 대타자를 소환하려는 움직임 역시 강박증과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던 피터슨에 대한 청년들의 숭배는 그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본 글에서는 개인적 차원 및 사회적 차원의 강박증의 메커니즘에 대한 관찰을 포함할 것이다.먼저 강박증의 일반적인 개념을 프로이트와 라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

대학원 담화 2024.12.09

시니피앙의 나무(문자라는 증서 4장)

“부유하는 두 왕국” 소쉬르의 부유하는 두 왕국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두 왕국이다. 기호의 형성은 부유하는 두 덩어리의 ‘동시적’ 절단으로 묘사" 한다.  이 동시적 절단은  관습적으로 묶인 기호의 단면이다. 라깡에게 부유하는 두 덩어리는 ‘쉼 없이 미끄러지는 것’이 관건이다. 기표도 흐르고, 기의도 흐른다. 소쉬르는 시니피앙 연쇄에 대한 시니피에 연쇄의 공존을 설정하지만, 라깡은 시니피앙의 ‘독립성과 선재성’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의미는 어떻게 의미화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의미화를 생산하기 위해서 시니피앙이 시니피에는 그만 미끄러지고 어딘가 정박해야 한다. 이 정박하는 지점이 누빔점이다.라깡은 에크리에 805쪼과 808쪽 사이의 누빔점의 그래프, 욕망의 그래프를 넣었다. ..

cartel 2024.11.22

욕망의 사후성(5장 언어적 기호의 가치와 라깡의 고정점)

“랑그란 언어 빼기 말” 소쉬르는 언어적 기호 개념을 제시한다. 언어적 기호는 사물과 단어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사고와 단절하고, 사물을 이름이 아닌 개념을 청각이미지와 결합시킨다. 청각이미지는 물질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심리적 각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소리의 대리표상’이고, 감각적이다. 소쉬르는 “랑그란 언어에서 말을 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어는 랑그와 말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적 기호는“두 측면(개념과 청각이미지)을 가진 심리적 실체”의“결합”관계를 통해 단번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개념은 기의로 청각이미지는 기표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체계는 기호의 자의성, 기호의 불변성, 기호의 변질, 기표의 선형적 성격이라는 특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위에..

cartel 2024.11.21

꿈의 언어

꿈은 우리의 무의식을 상연한다. 많은 꿈을 꾸며 살아왔지만, 최근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낮의 세계에 갑자기 보였다 사라지는 몇 장의 셀로판지는 통편집된 내 꿈의 일부를 보는 것 같다. 정신분석공부를 하기전에도 낮만큼 밤의 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꿈이 삶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가야만 하는 길’을 가르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꿈이 ‘압축과 전치’, 중복결정의 위장을 하는데 ‘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겠나 싶다. 예전 보다는 내게 ‘꿈의 위상’은 낮아졌다. 꿈이론에 대한 공부를 통해 알게된 것은 의식의 내가 꿈을 통해서 어떤 ‘진리’의 수준으로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개인의 신화일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라캉의 “무의식은 대타자의 담화”라는 언명에 따르면, ..

대학원 담화 2024.11.11

룸 넥스트 도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옆에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감독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하나의 기호처럼 다루는 것은 아닌지 물으면서, 죽음은 누구에게 내리는 눈과 같은 것이며, 우리가 아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듯 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옆방에 있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래층에 산다. 빨간 도어는 열려있으면 '삶'의 기호였지만 닫혀있으면 '죽음'의 기호가 된다. 그러나 기호는 틀렸고, 죽음은 느닷없이 삶에 포함된다. 느닷없지만, 폭력적이지 않는 죽음을 감독은 그려낸다.  이 영화는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경찰, 즉 법은 죽음에 대한 권리를 빼앗는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