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분류 전체보기 99

거울의 공격(2022. 1. 8.)

지난해 캭텔 발제문이다. 역시나 나는 반복하고 있다. 타격없는 반복이 반복된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다. 한 해가 지났다. 그리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12월 초부터 시작된 슬럼프가 저번주 일요일을 기점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새해 1월 1일은 자연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이러한 시간개념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한 달간 거의 어두컴컴한 집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칩거했는데, 1월 1일이라는 분기점은 젊은 시절처럼 분기탱천하는 무의미한 작심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새해라는 기표에서 나는 약간의 기운을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번 주는 몸이 가벼워진 것 같다는‘거짓말과 소문’이 내 세포들에게 전파된 듯 일어나서 청소와 빨래 등 비로소 몸을 움직일 맛이 났다. 무..

cartel 2023.11.15

증상적 사랑

사랑은 모두에게 기본값이다 짧은 생각이지만 좀 털어놓는다면, 모든 것이 사랑의 문제로 나에게는 귀결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의 문제의 원인이 '욕망'이라면, 그 욕망의 기저는 '사랑'이다. 권력 역시 사랑할 것을 강제하는 힘의 형태 중 하나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랑'을 요구한다. 물론 그 사랑은 '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자본' 역시 자본을 통한 대타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돈에 대한 사랑은 대타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수많은 범죄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에 결부되어 있는 것 같다. 뇌에 이상이 있지 않은 이상, 사랑없이 방치되면 아이는 괴물이 된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은 많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cartel 2023.11.04

환유는 반복이고, 반복은 무의미다

언어학과 무의식의 형성물 조엘 도르가 에크리독해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언어학과 무의식의 형성물'이다. 라깡은 소쉬르의 언어학의 구조를 참조하여 무의식을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구조주의는 인간의 의식 이전에 언어가 선행함을 전제한다. 언어구조 속에서 의미는 효과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와 함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꿈이 언어의 구조(압축과 전치와 은유와 환유와의 관계)와 같다고 본 라깡은 우리의 무의식이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었다는 언명을 한다. 우리는 꿈을 꾸면 해몽을 한다. 해몽은 일대일 대응의 상징으로 파악하는 일종의 신화적 해석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꿈을 분석은 무의식에 대한 탐사다. 무의식은 은유와 환유의 수사를 사용하여 꿈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그 꿈의 정확한 해..

cartel 2023.10.27

상식을 넘어선 현실계(니콜라스 플루리)

언표 행위는 향락 그 자체일 수 있다. 향락(jouissance) 쾌락과 고통을 넘는 것. 인간의 각각 개별적이고 특이적 형태. 존재 방식의 규정. 인간은 향락하는 양태임 말하는 존재의 향락 인간은 말을 함으로써 향락한다. 기표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언표행위를 통해 향락하는 것. 그러므로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셍톰(sinthome) 신체라는 사건으로서 향락 환상의 횡단 이후 잔여물. 무의식의 실재화. 분석이 종료되어도 남는 것. 증상은 향락의 측면이 있다. 시니피앙적 증상에서 셍톰으로 "셍톰은 무의식의 생성물이 아니라" " 분석 최후의 시점에서 생겨난 증상의 잔여물"이다. "셍톰은 암호화된 의미 작용이 아니라 머리없이 욕동[향락]하는 양태이다. " 증상은 욕망을 대상을 목표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백사

참새가 서까래아래서 날개짓을 한다. 다른 형체와 싸우는 듯 했다. 참새는 날아가고, 참새는 뱀에게 물리려다 날아간 것이다. 천장에서 꺼꾸로 매달린 백사를 보았다. 백사는 웃는 듯 보였다. 하얀색의 뱀을 보고 엄마와 나는 집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 푸른 들판이 있는 도로였다. 우리는 도로옆으로 가다가 어떤 차와 부딪힐 뻔했다. 차안을 자세히 보니 엄마와 엄마친구 그리고 엄마친구 남편이 있었고 엄마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빨리 앉으라고 말하고 나서 나를 나도 역시 벌거벗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꿈에서 깼다. 여기는 교토다. 교토에서 백사를 만나다니... 백사는 팔루스의 압축이다. 압축은 은유다. 내 욕망의 압축이다. 벌거벗은 어머니의 형상이 연이어 나타났다. 벌거벗은 어머니는 형상은 훼손..

카테고리 없음 2023.10.12

불안의 목적

불안은 나에게 습관이 되어 더 이상 불안하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불안이 무엇일까. 신체적 증상인가? 기분이나 감정인가? 아니면 생각의 막다른 골목인가? 불안에 대해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눈뜬 장님과 같다. 우리가 불안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의 이유를 타진해 볼 수 있고, 불안의 근거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면 사실 그것을 불안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불안은 기표의 환유만으로는 억압되지 않는다. 그러한 불안은 상상계적인 불안이다. 상상계적인 불안은 잉여향유의 매개체이다. 히스테리자의 장난감이다. 그러한 표피의 불안은 기표의 환유를 통해서 잠시 가라앉기도 하지만, 우리의 근원적 불안, 즉 알 수 없는 불안은 모든 것을 ..

cartel 2023.09.22

타자의 현현 (사랑의 지혜) - 알렝 핑켈크로트 -

사랑에 관한 많은 말들이 있다.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는 사랑하는 사람의 타자성에 대해 짧지만 녹록치 않은 무게로 쓴 책이다. 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읽다가, 남기고 싶어서 몇 줄 적어본다. 수 많은 말들 중에서 주는 행위와 받는 행위, 자비와 탐욕, 자선과 소유욕을 동시에 의미하는 낱말이 하나 있다. 사랑이라는 말이다. 자기르 ㄹ충족시켜 줄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어떤 존재가 갖게 되는 격렬한 욕망과 무조건적인 헌신이 같은 어휘 안에 역설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를 염려하는 마음의 극치를 일컬을 때에도, 또 타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일컬을 때에서도 모두 사랑이란느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누가 아직도 무사무욕을 믿고 있는가? 누가 무상의 행위를 진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근대..

왜 정신분석인가

저는 때때로 발이 지면에 닿지 않는 듯 세상이 당황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이라는 무대를 배회하는 하나의 거푸집 같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과의 대결 혹은 공범의식의 속에서 불안. 분열에 대한 불안감이 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의식을 벗어나기 위해 저는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안은 저를 ‘신’에게 데려가진 않았습니다. 인간과 닮아있는 신은 의심스러워 ‘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을 끝장낼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습니다. 종교나 잠언, 철학과 문학 말로된 모든 것은 일시적으로 증상을 가라앉힐 수는 있었으나, 허무의 동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저의 의심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흑백의 남자 ‘라깡’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

cartel 2023.09.13

압축과 전치를 사용한 무의식의 풍경

프로이트는 꿈에서 압축과 전치를 사용하여 무의식의 과정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이 이론에 입각하여 나의 꿈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가장 최근에 꾼 꿈이다.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 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네 집이다. 친구네 집에서 올려다본 천장에 큰 물고기. 사람만큼 큰 물고기가 머리위에서 왔다갔다 했다. 한 5마리 쯤 되려나. 나는 어떻게 천장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가 했는데, 사람인 우리도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 " 물에서도 숨을 쉴 수가 있지." 마치 그 사실을 잊었다가 생각이 난듯 친구에게 말했다. 거실과 방에 유유히 큰 물고기가 떠다닌다. 물고기꿈 이후에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들판을 걷는다. (아버지는 전맹이다) 아버지는 검은모자를..

프로이트 2023.09.12

무의식의 확실성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존재의 확실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프로이트는 데카르트 처럼 회의의 방법을 통해 무의식의 확실성을 논증하고자 했다. 꿈이나 말실수와 같은 것은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라깡은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런데 회의는 바로 확실성의 근거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가장 힘주어 강조하는 바입니다. 프로이트는 어째서 회의가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지를 밝힙니다. 즉, 회의 자체는 무언가 지켜야 (숨겨야) 할 것이 있음을 뜻하는 기호라는 것입니다. 회의는 저항의 기호인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