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범주없는 글쓰기 8

룸 넥스트 도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옆에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감독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하나의 기호처럼 다루는 것은 아닌지 물으면서, 죽음은 누구에게 내리는 눈과 같은 것이며, 우리가 아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듯 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옆방에 있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래층에 산다. 빨간 도어는 열려있으면 '삶'의 기호였지만 닫혀있으면 '죽음'의 기호가 된다. 그러나 기호는 틀렸고, 죽음은 느닷없이 삶에 포함된다. 느닷없지만, 폭력적이지 않는 죽음을 감독은 그려낸다.  이 영화는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경찰, 즉 법은 죽음에 대한 권리를 빼앗는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해서는..

무의미의 체포

의미의 덫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의미의 의미라는 연쇄가 아니라, 무의미를 체포해야한다. 어떻게 의미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자. 그 무중력의 상태를 지루한 반복, 멈춤이 방법이다.  의미의 외부로 돌출 의심과의 쟁투 이미지와의 전쟁지루한 반복의 고된 노동무중력의 하루일단은 그것이 필요하다. 리비도의 회수 내 존재를 어디에 내어줄 것인가? 생명을 어디에 바치고 있는 것인가?  하루하루가 나 자신과의 사투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텍스트와 사투를 벌어야 한다. 그것이 고된 길이라도 말이다.

물고기 꿈

친구네 집에 갔다 천장에 큰 물고기. 사람만큼 큰 물고기가 머리위에서 왔다갔다 했다. 한 5마리 쯤 되려나. 나는 어떻게 천장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가 했는데, 사람인 우리도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쉴수있었다. 꿈의 재료는 아쿠아리움의 배가 보이는 물고기 였다. 물고기꿈 이후에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최근에 거의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반갑다고나 할까.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들판을 걷는다. (아버지는 전맹이다) 아버지는 검은모자를 쓰고, 바람부는 들판을 걸으며, 음악소리를 듣는다. 낯익은 음조. 멀리 학교에서 들리는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청각적 이미지를 도입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한 오피스텔로 나를 데려갔다. 약자였던 그였는데, 그 오피스텔은 그가 불법적인 일을 도모하거나, 도와준 댓..

일상 속 신화 MBTI

나의 MBTI는 INTP이다. '논리적 사색가'로 대변되는 이 유형은 다소 소수라고 한다. 문제를 풀며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가늠하면서 솔직한 답변을 되도록 애를 썼지만, 이것이 내가 욕망하는 이상적 자아인지 실제의 내 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유형을 읽으면서 '맞다' 혹은 '대충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유형이 나왔어도 '대충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점집'이 먹고 사는 이유도 귀신같이 맞혀서가 아니라 인간의 유형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기도 한 이유다. 마치 증상의 이름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처럼 우리는 하나의 유형에 수렴될 때, 우리는 어떤 안도감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안할 때 마다 그 타자의 기표들을 꺼내 쓴다. 자신은 '논리적 사색가'이며, 그들은 '이러저..

응시의 선재성

의식활동 지평으로서의 신체 먼저 메를로퐁티는 의식은 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닌 충만한 전제로부터 시작한다고 보고 주장하며, 이에 전제는 바로 우리의 신체이다. 특히 의식, 의식의 감각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각은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추상적인 한 지점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신체 때문에 상대화된 국지적인 지점에 놓여있을 뿐이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국지적인 지점을 놓여서 상대적인 관점, 제한된 관점에서 의식 활동을 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메를로퐁티의 논점이다. 메를로퐁티의 신체는 라깡의 실재와 유사한 개념으로 보이는데, 라깡의 실재는 '의미가 주어지지 않은 사물로서의 신체'이다. 메를로퐁티는 우리가 “우리의 신체에 의해서 세계에 존재하는 한, 우리의 신체로 세계를 지각하는 한, 세..

에크리 필사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하나의 구조가 정신분석으로 불리는 실천을 구성하고 있다. 오늘 여기 모입 사람들처럼 철학에 조예가 깊으리라 사료되는 청중은 이 구조에 무관심할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라는 것은 세상 모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은, 그와 같은 말의 타당성 여부가 그것의 결정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는 특수성을 갖고 있는 흥미로운 진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되어야만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철학적 타당성인데, 왜냐하면 헤겔이 정신현상에서 역사에 대해 제시하는 도식은 결국 그와 같은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이렇게 요약하는 것은 주체를 위치시킬 수 있는 용이한 매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