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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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죄책감

나는 분석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 아마 30대에 들어서서 죄책감을 벗어던졌다고 느꼈다. 과연 이제 나는 죄책감이 없는가? 죄책감에 대한 나의 서사 20대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책감을 큰 것은 자아의 비대함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다들 고생하며 살지 않을 텐데..스스로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과도한 환상 같은 것이다. 23세에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돌연 의대에 가겠다고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특히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심했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언제나 빚을 진 자였다. 부모간의 불화와 사업실패에 따른 경제어려움, 그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한 보상을 내가 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

cartel 2024.05.03

성욕의 담지자 시니피앙

무의식의 현실은 성적이다.  라깡은 다음과 같은 경구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전이는 무의식의 현실을 현행화하는 것이다'  1라깡은 전이에 대한 분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경향의 어떤 것이 이 경구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어떤 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일 것이다. 섹슈얼리티, 성, 성적현실은 동물과 같이 ‘번식이라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인간에게는 동물의 성과 다른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인가? 라깡은 무의식이 어째서 성적 현실이고, 이 성적 현실이 시니피앙의 도입과 동시에 욕망이 생성된다는 논점이 세미나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전이가 무의식을 현행화한다는 입장, 즉 사람들이 회피하는 성과 관련된 이 문구가 자신이 그동안 가르쳐왔던 입장과 다소 애매한 것은 아닌지 라깡은..

cartel 2024.04.25

기표의 죽음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기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의 기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의 기표는 모든 인간이 쥐고 있다. 그 기표의 효과가 개별적인 것일 뿐...하나의 존재는 자신의 기표를 품고 죽는다. 그것을 알던, 알지 못하던 자신의 기표 아래서 한바탕 소동처럼 살아가다가 어느날 알려지지 않은 기표를 가지고 살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그 기표를 죽인다. 남아있는 자들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잉여기표를 생산하기도 한다. 인간의 근원적 상실감은 죽음의 잉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이상스의 상실은 죽음과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존을 담보한 주이상스가 어찌 근원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왜 주이상스, 그 무의미의 힘에 우리가 왜 지배당하는지 의아했다. 무력한 존재는 타자의 돌봄없이 살아날 수 없고..

cartel 2024.03.15

L도식에 대한 이해(조엘도르 에크리 22장)

주체는 담화 속에서만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한 기표는 다른 기표를 위해 주체를 대리한다는 정식에 따르면 하나의 기표가 주체를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를 대리하면서 주체는 효과로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우리는 주체는 자아를 통해서만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주체는 자아를 통해서 드러난다고도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자아의 담화 속에서 일 것이다. 자아의 담화는 실제적 타자와 대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데, L도식은 그 담화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도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L도식 L도식의 화살표를 따라가 보면 주체에서 소타자로 소타자에서 자아의 방향이 있고, 대타자에서 주체로 대타자에서 자아로의 방향이 있다. 소타자에서 자아로의 방향은 상상적..

cartel 2024.02.27

자아, L도식, 회복

자아의 발생 언표행위의 주체와 언표의 주체의 분열은 담화 속에서 일어난다. 담화는 말하기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하기는 언표행위에 해당하고, 말은 언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표행위는 누가 하는가? 언표행위의 주체라는 것은 무의식의 주체이자 욕망의 주체이고, 언표의 주체는 의식의 주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발화를 할 때, 발화의 내용은 언표에 해당하고 발화 그 자체는 언표행위라고 생각된다. 무언가를 말을 할 때, 언표행위의 주체가 겨냥하는 것은 대타자를 향한 담화이지만, 현실속에서는 우리는 우리와 닮은 소타자에게 말을 건넨다. 소타자는 나와 닮은 타자, 거울 속의 타자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깡은 담화의 차원에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소타자를 경유한..

cartel 2024.01.28

잉여향유로서의 일자 - 일자의 몰락

잉여향유로서의 일자 - 일자의 몰락(백상현 강의 중) 민주주의에서 대표는 일자를 세우고, 그에게 신과 같은 역할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가 신처럼 완벽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그를 다시 무너뜨린다. 대중은 성도착과 같이 물신을 도입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이 인류학으로 도정할 수 이유는 이처럼 개개인의 대중은 신경증이지만 대중은 도착증과 같이 물신을 도입과 파괴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일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일자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바디우는 전제하고 어떻게 기능하는지 밝힌다. 일자는 믿음이다.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올바름은 하나다 (변주하거나, 잘못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자에 의해 보호받기도 한다. 인류의 용암 주이상스, 죽음충동이 세계를 움직인다. 우리는 모두 히스테리자이다. ..

카테고리 없음 2023.12.04

새로운 인생

정말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목이라도 잘라야 하나? 회전의자에 묶여 빙빙돌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자신에 대한 권태와 지겨움 그리고 역겨움...무거운 머리, 정지된 화면들, 밀려들어오는 '뻔한 말들'...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이게 증상이라면 나는 마지막 향유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향유의 시간을 질질 끌면서, 뱅뱅 도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은 증상도 없고, 건강함만 있는 한 낮의 시간이 될 것이고, 안정과 고요속에서 묵묵히 공부하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진리를 통과하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어떤 미련이 있다. 이 미련은 어쩌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나의 상상계적 오..

cartel 2023.12.04

유한에서 무한으로

정말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목이라도 잘라야 하나? 회전의자에 묶여 빙빙돌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권태와 지겨움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 무거운 머리, 정지된 화면들, 밀려들어오는 '뻔한 말들'...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이게 증상이라면 나는 마지막 향유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향유의 시간을 질질 끌면서, 뱅뱅 도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은 증상도 없고, 건강함만 있는 한 낮의 시간이 될 것이고, 안정과 고요속에서 묵묵히 공부하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진리를 통과하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어떤 미련이 있다. 이 미련은 어쩌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나의 상상계적 오..

카테고리 없음 2023.11.29

새로운 마지노선

욕망의 마지노선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욕망한다. 마지노선이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이 선만 넘으면, 이 선에 가까이가면 그 욕망이 해소되고, 안정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 욕망이 큰 것이던 작은 것이던 한 번 원하기 시작하면 그 것을 포기하기 전까지 계속에서 그 욕망에 매달리게 된다. 그 욕망이 사람이건 물질이건 건에 우리는 그것을 향해 달리다가 종결된다. 죽음으로써 종결되면 그 동안의 그 욕망들은 부질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욕망에 대한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왜 욕망은 포기되지 못하는가? 그리고 하나의 욕망은 언제나 다른 욕망을 앞지른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 그러한 것 같다. 우리의 욕망은 멀티인 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다. 우리의 욕망은 하나의 구덩이를 채우..

카테고리 없음 2023.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