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대학원 담화

각각의 오이디푸스

untold 2024. 11. 5. 10:01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해소되면서 초자아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이른 시기에 나타난다. 아기는 죽음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자신 안에 있는 공격성을 방어하기 위해 분열의 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이 공격성은 아기에게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분열시키고, 특히 나쁜 대상은 죽음욕동을 상기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리는 편집-우울적 자리로 아기가 엄마를 전체 대상으로 통합하기 이전 시기이다. 이 시기에 아기는 구강 가학성이 외부에 투사되기도 하고 내사되기도 한다. 내사된 공격성은 아직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젖떼기 경험을 통하여 아기는 나쁜 젖가슴에 대한 박해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아기는 자기가 엄마를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면서 죄책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죄책감은 초자아의 산물이며, 초자아의 형성은 오이디푸스 경향이전에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 멜라니 클라인의 견해이다. 
즉, 초자아는 구강-가학적인 공격성이 내사와 투사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며, 초자아와 자아의 긴장 상태에 죄책감이 발현된다고 본 것이다.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부모의 모습을 내재화한 초자아이다. 오이디푸스 갈등 속에서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요구를 억압하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초자아라면,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아버지의 개입 이전에 초자아가 등장한다고 본 것이다. 오이디푸스 경향도 생후 2~3개월경 이유기를 겪으며 느끼는 좌절의 결과라고 보았다. 항문기를 거치며 다시 강화되며, 박해불안과 죄책감을 동반하게 된다. 아이의 초자아는 어머니의 젖가슴, 즉 좋은 대상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아이는 나쁜 젖가슴에 대한 공격성으로 자신이 보복 당할까 두려워 한다. 이 점 역시 어머니의 통합이전의 시기로, 아이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격에 대한 죄책감을 양산하며, 이를 멜라니 클라인은 초자아의 등장에 따른 결과로 본 것이다. 좋은 젖가슴과 나쁜젖가슴의 분열 초자아 형성의 토대가 된다. 이 초자아의 성격은 어떠한가?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양심과 윤리, 즉 아버지의 법에 기반하고 있으나,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내적 충동을 투사하는 외적 위험으로 아기는 자신을 파괴하는 대신 ‘어머니’를 파괴하고자 하는 환상”이 생긴다. 이 불안과 죄책감은 근친상간적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파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초자아는 아이를 억제하는 부모와 같은 초자아가 아니라, 아이를 위협하는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아이를 물어뜯고 삼키는 존재이며, 내사한 공격성이 마치 외부의 대상이 내부에 함입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유아기때 부터 자아와 초자아의 분열은 극심한 듯 보인다. 취약한 자아는 ‘성적호기심과 초자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 아이의 ‘부족한 언어 능력, 신체에 대한 성적 호기심’은 해결되지 못한채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아이의 인식애적 충동은 가학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어머니에 신체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욕망은 소유의 욕망으로 바뀌면서 오이디푸스 갈등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더해진다. 
  멜라니 클라인은 리처드를 분석하면서 오이디푸스갈등의 국면이 여러차례 바뀌는 것을 관찰한다.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사랑, 아버지에 대한 질투와 증오 등의 우울적 자리와 편집-분열적 자리의 퇴행을 왕복하면서 자신의 환상과의 타협을 통해 어느정도 긍정적 오이디푸스 상황과 이성애 발달이 진행되었다. 

   오이디푸스 경향이 아이의 욕망의 금지를 받아들이는 거세의 과정을 포함한다고 했을 때, 멜라니 클라인에게는 그 욕망이 공격성이라 생각된다. 이 공격성이 내재화되어 초자아가 아이를 위협한다. 프로이트적 초자아와 성격이 다른 이 초자아는 가혹한 초자아이다. 어머니를 공격한 댓가로 초자아에게 공격을 받는 것으로 이해해 본다면. 이 가혹한 초자아는 아이의 죄책감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1928년 논문에는 ‘죄책감은 초자아 형성의 산물’ 이라고 나와있다.)  쾌락원칙을 초과하는 죽음충동과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의 권위를 내재화된 초자아와 가혹한 초자아는 인간의 내면에 공존한다고 볼 수 있을까?

 

    프로이트, 라깡, 멜라니클라인의 오이디푸스는 모두 다르며, 이를 통합할 필요는 없다. 하나의 이론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각각의 이론은 상황에 맞춰 적용할 필요도 있다. (교수님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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