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그란 언어 빼기 말”
소쉬르는 언어적 기호 개념을 제시한다. 언어적 기호는 사물과 단어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사고와 단절하고, 사물을 이름이 아닌 개념을 청각이미지와 결합시킨다. 청각이미지는 물질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심리적 각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소리의 대리표상’이고, 감각적이다.
소쉬르는 “랑그란 언어에서 말을 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어는 랑그와 말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적 기호는“두 측면(개념과 청각이미지)을 가진 심리적 실체”의“결합”관계를 통해 단번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개념은 기의로 청각이미지는 기표로 대체될 수 있다. 이러한 언어체계는 기호의 자의성, 기호의 불변성, 기호의 변질, 기표의 선형적 성격이라는 특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위에서 제시된 기호의 특성을 살펴보면, 언어적 기호는 즉,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그러나 이 자의식은 개인적인 자의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의성의 결과이고, 이러한 자의성은 한동안 불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의미가 안정되고,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기호는 변질된다.
기호의 가변성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의 변화로부터 나온다. 기표는 이미 시간을 전제하는데, 음소의 길이가 기표의 시간적 연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랑그는 통사축이라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방향을 가진 연속적 계열이 바로 라깡이 부르는‘기표사슬’이다.
랑그는 기호들을 전제한 구조이다. 즉, 언어적 요소(어휘)가 있고, 이 요소를 지배하는 법칙이 전제된다. 이 내적법칙들은 기표의 선형적 특성에 접근하자마자 개입한다. 각 랑그에서 의미 연쇄를 지배하는 법칙과, 대체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 의미연쇄를 지배하는 법칙은 통사적 이고 대체를 지배하는 법칙은 범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쉬르는 언어체계를 둘로 나누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동시적으로 두 계열의 작용을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편으로는 일정 수의 언어 단위를 선택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 단위를 서로 조합하는 것이다. 선택은 범열축이고, 조합은 통사축이다. 담화는 이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 축은 은유와 환유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라깡은 이 과정에서 기표의 우위, 즉 무의식의 형성물은 범열축, 은유의 차원에서 낳는 결과라고 보았다.
기호의 경계
말의 사슬이 소쉬르의 “언어적 실체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에 의해 존재한다면 이 실체는 경계가 지어질 때 규정될 수 있다. 이 경계설정은 정신분석에 언표행위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말의 사슬은 이중적 사슬이다. 개념의 연쇄와 청각이미지의 연쇄이므로 청각이미지의 모든 경계 설정은 개념사실에서의 후속적 경계 설정을 야기할 것이다. 일대일 대응 관계를 설정하면 경계설정을 보여준다. S1과 필연적 s1이 결합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고, 의미를 보장해준다해도 기호가 다른 기호로부터 분리될 때 어떤 주어진 청각이미지가, 주어진 의미를 갖도록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발화된 청각이미지에 두개의 가능한 기의가 결합될 수 있다. 이는 두 개의 다른 의미를 낳는다. 발음이 같은 두 문장의 의미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맥이 기호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언어적 기호의 현실을 다른 모든 기호와 관련해서만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소쉬르가 기호의 가치라고 부르는 속성이다. 가치란 하나의 청각적 단편이 실재적이고 구체적으로 되도록 하는 것이다. 가치를 통해 이 청각적 단편은 의미를 구성하면 언어적 기호가 된다.
다시 말해 언어는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구별할 수 있으며, 언어적 기호는 다른 기호와 관련함으로써 기호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문맥이 기호의 경계를 설정한다는 것은 기의와 기표의 결합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언어의 구조적 체계란, 언어적 기호는 다른 기호와 관련을 맺을 뿐 아니라, 말의 사슬 속에서 대립관계에 의해 의미를 갖게된다. 이 의미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것은 체계이다.
언어(행위)는 사고의 흐름과 음소의 흐름(소리의 흐름) 속으로 동시에 도입된 일련의 구분으로 등장한다. 그리하여 "랑그가 형태 없는 두개의 덩어리 사이에서 구성되어 자신의 (언어적) 단위들을 만들어 낸다면 언어적 기호는 이 두 개의 무정형의 덩어리의 접합에 상응한다.”
즉 하나의 관념은 음소의 연속이 하나의 관념에 대한 기표로 구성됨과 동시에 음성 속에서 고정된다.
소쉬르는 이렇게 표현한다.
"랑그는 한장의 종이와 비교될 수 있다. 사상은 종이의 앞면이고 소리는 뒷면이다. 우리는 뒷면을 자르지 않고는 앞면을 자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랑그에서도 사상에서 소리를, 소리에서 사상을 분리할 수 없다.”
소쉬르는 언어적 기호의 구조는 사고의 흐름에 개입하는 절단에서 나온다고 본다. "기의나 기표를 고찰해보면 랑그는 언어 체계보다 앞서 존재하는 개념이나 소리가 아니라, 그 언어체계에서 유래하는 음소적 혹은 개념적 차이일 뿐이다.“
만일 기표의 출현이 절단에서 나온다면, 엄밀히 말해 거기에는 기표의 흐름이 없다. 기표의 질서를 태어나게 하면서 동시에 기표를 개념에 결합시키는 것은 절단 작용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출현은 전체로서 언어적 기호의 생성과 분리될 수 없다.
절단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형태없는 덩어리에 기표가 접합됨으로써 소리와 개념을 동시에 출현시킨다. 언어체계 속에서 랑그는 구조인데, 구조는 통사적이라면 통사적인 것이 의미이고, 환유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구조는 스토리다.
이와 달리 라깡은 기표와 기의의 결합하는 동시에 구분하는 ‘절단’이 아니라 그가 고정점이라고 부르는 독창적 개념으로 경계 설정을 한다. 소쉬르는 경계를 의미로 보았는데, 라깡은 기표와 기의의 구분을 절단이 아닌 고정점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기의에 대한 기표의 관계는 "항상 유동적이고 항상 해체될 준비가 되어있다" 고 말한다.
고정점에 의한 라깡의 경계 설정은 정신병에 대한 경험에서 근거를 발견한다. 정신병에서는 기표의 무한연쇄만 있을 뿐 의미를 형성하지 못한다. 고정점이 없다.
고정점
라깡이 말하는 경계설정의 의미를 갖는 고정점은 욕망의 질서와 관계될 때만 의미를 획득한다. 실제로 라깡에게 고정점은 무엇보다는 그것을 통해 기표가 의미화 작용의 끊임없는 미끄러짐을 정지시키는 작용이다. 담화사슬 속에서 기표와 기의가 결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욕망의 그래프
두 지점에서 기표사슬 SS'에 갈고리를 채움으로써 고정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바로 벡터( △→$ )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쉬르의 절단과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라깡에게 의미화 작용을 위한 경계설정은 연속적인 기본 단위(말의 사슬이 다른 모든 기호와 맺는 대립관계 속의 의미)가 아니라, 발화되는 연속의 총체(말의 사슬 속에서 기표의 접합) 속에서 이루어 지는데, 이는 기표의 접합이 끝났을 때만 생겨날 수 있으므로 기호는 오직 소급적으로만 의미를 갖게된다.
라깡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문장에서 고정점의 통시적 기능을 발견한다. 그것(문장)이 마지막 항목에서만 의미작용을 끝낼 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각 항목은 다른 모든 항목이 구성될 때 이미 예기되어 있으며, 역으로 소급적 성과를 통해 그것들의 의미를 규정한다.”
이러한 소급적 차원은 역방향을 갖는 벡터에 의해 이 도식에서 표현된다. 달리말하면 고정점이 의미화 작용의 미끄러짐을 멈추는 일은 사후적으로 일어난다. 언표행위의 애매성은 의미화가 사후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때문에 주로 생겨난다.
소쉬르는 절단과 라깡의 고정점
소쉬르의 언어구조개념을 라깡은 정신분석에 차용하였는데,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소쉬르가 청각이미지와 개념의 접합, 그리고 이것의 경계설정을 기호와 다른 기호의 관계 속에서 파악한 것과 같이 라깡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의 경계를 하나의 점으로 상정했다. 이 점이 있기에 의미화작용은 멈출 수 있으며, 이 점을 통과함으로써 의미가 사후적으로 획득되는 것으로 보았다. 무의식의 구조에서 우리의 욕망은 기표사슬을 통과하면서 사후적으로 획득된 의미를 취하게 된다. 이 기표사슬이 없다면 우리의 욕망도 없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표에 우리가 지배되어 욕망의 의미를 토해낸 것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표와 기표사이의 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새로운 욕망의 산출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 될 것이다. 기표와 기표사이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의미는 우리가 언어를 일상적 차원에서 소중히 다루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이 담화의 형식인 것은 랑그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이 언어와 같이 구조되어 있다는 말은 우리의 무의식이 랑그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랑그의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열적 차원도 개입되어 있어 무의식은 담화의 구조를 가진다. 그러한 무의식의 담화는 사후적인 담화이다. 우리는 또 다른 사후적 담화를 산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유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고정점이란 사실은 고정되지 않았다. 무의식에서 기표와 접합한 우리의 욕망이 다른 욕망이 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202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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