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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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일반적인 차원에서 소외감은 삶의 공허감과 같은 말처럼 쓰인다. 주인의 반대말 처럼도 쓰인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여 몸을  느끼는 것일까. 소외는 일종의 정동이지, 실체가 아니다.  소외의 효과로서 우리는 '자아'를 찾겠다는 일념을 지니게 된다.  언어로 거세된 존재의 분열은 '진실게임'에 들어선 것이다.타자를 치는 나의 손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다.  머리 중앙에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는 나. 나의 시선은 카메라와 스크린의 두 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열된 상황을 소외라고 싶다.

cartel 2024.09.05

증상의 반복

내게 있어서 이제 반복이란 '증상의 반복'이다. 그것은 시간을 두고 반복된다. 인생 자체가 증상의 변주된 반복이다. 그것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런데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어떤 것이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패턴을 읽어내려고 애쓰고, 그리고 찾아낸 패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골몰하면서,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대타자'를 찾는다. 증상의 의미를 찾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증상의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뭐가 또 달라질까? 그렇다면 우리는 포악한 증상에 사로잡혀 끝, 죽을 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고통의 삭제를 위해 증상의 해석을 타자에게 구한다면, 그 해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라깡정신분석에서는 내담자 스스로가 그 증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윤리'로 본다. 비록 상..

카테고리 없음 2024.06.26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는 내담자의 치료를 욕망하지 않는다. 상처는 벌려놓은 채로, 증상은 남아있다는 소리다. 정신분석이 끝나고 증상과 함께 살아가기가 가능해지지만, 새로운 증상의 출몰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쾌락의 감산이 뒤따른다.  '증상에의 향유'가 '공백에의 욕망'을 만나면  예전의 향유를 반복하기 어렵게 된다. . 환상 뒤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다른 증상을 찾는다. 어쩌면 증상의 창의적 전개가 관건인지 모르겠다.  정신분석가의 공백의 주입을 통해 내담자의 서사는 그 '신화적 힘'을 잃게 된다. 원인과 결과의 논리들은 무의식의 논리에 종속된 것을 알게되면 내담자의 인생은 달라진다. 달라진 인생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

cartel 2024.06.03

꿈의 재개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보거나,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 나는 그 고속철도에 탔는데, 어두운 터널로 들어서자 굉장한 속도로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가족단위였고 나는 혼자였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고속철도는 달리다가 급강하 했는데, 발이 허공에 뜨고 얼굴에 바람이 느껴졌다. 원래 그와 같은 서늘한 스릴을 즐기는 터라 나는 무섭지 않았다. 철도가 멈추고 내리니 어느 항구마을이었다. 오래된 관광지같은데, 불결한 시장도 함께 있었다. 한 여경찰이 볏짚을 들어 거기 쥐똥을 보여줬다. 그리고 가다가 죽은 비둘기도 보였다. 나는 낡은 호텔에서 씻고 가려고 했는데, 어떤 여자가 양말을 잔뜩들고 나와 부딪혔다. 그녀는 오늘 양말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짝의 양말을 어..

죄 없는 죄책감

나는 분석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 아마 30대에 들어서서 죄책감을 벗어던졌다고 느꼈다. 과연 이제 나는 죄책감이 없는가? 죄책감에 대한 나의 서사 20대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책감을 큰 것은 자아의 비대함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다들 고생하며 살지 않을 텐데..스스로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과도한 환상 같은 것이다. 23세에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돌연 의대에 가겠다고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특히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심했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언제나 빚을 진 자였다. 부모간의 불화와 사업실패에 따른 경제어려움, 그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한 보상을 내가 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그..

cartel 2024.05.03

성욕의 담지자 시니피앙

무의식의 현실은 성적이다.  라깡은 다음과 같은 경구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전이는 무의식의 현실을 현행화하는 것이다'  1라깡은 전이에 대한 분석에서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경향의 어떤 것이 이 경구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회피하는 어떤 것은 바로 섹슈얼리티일 것이다. 섹슈얼리티, 성, 성적현실은 동물과 같이 ‘번식이라는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인간에게는 동물의 성과 다른 의미가 생기게 된 것인가? 라깡은 무의식이 어째서 성적 현실이고, 이 성적 현실이 시니피앙의 도입과 동시에 욕망이 생성된다는 논점이 세미나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전이가 무의식을 현행화한다는 입장, 즉 사람들이 회피하는 성과 관련된 이 문구가 자신이 그동안 가르쳐왔던 입장과 다소 애매한 것은 아닌지 라깡은..

cartel 2024.04.25

기표의 죽음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기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죽음의 기표가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의 기표는 모든 인간이 쥐고 있다. 그 기표의 효과가 개별적인 것일 뿐...하나의 존재는 자신의 기표를 품고 죽는다. 그것을 알던, 알지 못하던 자신의 기표 아래서 한바탕 소동처럼 살아가다가 어느날 알려지지 않은 기표를 가지고 살다가 사라진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그 기표를 죽인다. 남아있는 자들은 사라진 존재에 대한 잉여기표를 생산하기도 한다. 인간의 근원적 상실감은 죽음의 잉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이상스의 상실은 죽음과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존을 담보한 주이상스가 어찌 근원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왜 주이상스, 그 무의미의 힘에 우리가 왜 지배당하는지 의아했다. 무력한 존재는 타자의 돌봄없이 살아날 수 없고..

cartel 2024.03.15

L도식에 대한 이해(조엘도르 에크리 22장)

주체는 담화 속에서만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한 기표는 다른 기표를 위해 주체를 대리한다는 정식에 따르면 하나의 기표가 주체를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표가 다른 기표를 대리하면서 주체는 효과로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논의에서 우리는 주체는 자아를 통해서만 자신을 파악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주체는 자아를 통해서 드러난다고도 바꾸어 말한다면, 그것은 자아의 담화 속에서 일 것이다. 자아의 담화는 실제적 타자와 대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데, L도식은 그 담화의 구조를 설명해주는 도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L도식 L도식의 화살표를 따라가 보면 주체에서 소타자로 소타자에서 자아의 방향이 있고, 대타자에서 주체로 대타자에서 자아로의 방향이 있다. 소타자에서 자아로의 방향은 상상적..

cartel 2024.02.27

자아, L도식, 회복

자아의 발생 언표행위의 주체와 언표의 주체의 분열은 담화 속에서 일어난다. 담화는 말하기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하기는 언표행위에 해당하고, 말은 언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표행위는 누가 하는가? 언표행위의 주체라는 것은 무의식의 주체이자 욕망의 주체이고, 언표의 주체는 의식의 주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발화를 할 때, 발화의 내용은 언표에 해당하고 발화 그 자체는 언표행위라고 생각된다. 무언가를 말을 할 때, 언표행위의 주체가 겨냥하는 것은 대타자를 향한 담화이지만, 현실속에서는 우리는 우리와 닮은 소타자에게 말을 건넨다. 소타자는 나와 닮은 타자, 거울 속의 타자이미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깡은 담화의 차원에서 우리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소타자를 경유한..

cartel 20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