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영화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 옆에 삶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감독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지, 하나의 기호처럼 다루는 것은 아닌지 물으면서, 죽음은 누구에게 내리는 눈과 같은 것이며, 우리가 아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듯 한다. 우리에게 죽음은 옆방에 있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보지 않기 위해 아래층에 산다. 빨간 도어는 열려있으면 '삶'의 기호였지만 닫혀있으면 '죽음'의 기호가 된다.
그러나 기호는 틀렸고, 죽음은 느닷없이 삶에 포함된다. 느닷없지만, 폭력적이지 않는 죽음을 감독은 그려낸다.
이 영화는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경찰, 즉 법은 죽음에 대한 권리를 빼앗는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논의가 진행될지 알 수 없다.
마사는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음을 토로한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지 않고 우리는 그 허망함의 깊이를 알 수 있을까?
우리가 한 때 즐기고 마셨고, 누렸던 것, 중요한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의미가 사라자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의미를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무의미'만 남는다. 농담처럼 섹스만이 남는 것이 특히 그러하다.
거대한 환상이 소멸되는 것을,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집착들이 사라지는 경험이 어쩌면 빠를 수록 좋을 것이다.
나처럼 늙어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 사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에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속에 자주 등장하는 은유 '산자와 죽은자 모두에게 내리는 눈'처럼 말이다.
나의 삶이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버려야 할 것에 대해 셈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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