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은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출간에 따라 시관적 기능 역시 반복에 관한 설명의 일부라고 여긴다. 거기에 어떤 만남이 있다면, 이는 의식을 무의식의 관점에서 어떻게 위치시킬 수 있는지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담화 자체에서 의식의 사태란 무엇인가?
라깡은 어느 정도의 음영, 혹은 무착색 부분에 의해 각인된다고 설명한다.
프로이트에게 의식은 착색되지 않는 부분, 즉 무의식에 의해 착색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 분석이 밝혀낸 심리적 발달에 관한 모든 개념에서 ‘투케적인’ 사태가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눈, 절호의 만남, 불길한 만남 등에 관한 것.
1. 127P
젊은 파르크는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표상관의 관계 속에서 의식의 본질적인 대응물 중의 하나로서, ‘나는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본다’로 지칭되는 무엇가를 포착해낸 철학자의 모습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본다.
초자아, 대타자의 응시.
표상속에서 사유의 근거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의심하는 소위 방법적 회의
어떻게 그 사유의 외피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토대가 될 수 있는가?
사유의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가?
내재성에 속한 듯이 보이는 지각을 통해 세계를 파악한다. 여기서 주체의 특권은 내가 지각한 표상들을
내것으로 만들어 주는 양극적인 반영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이상화(관념화)되어씬느 것은 아닐까하는 추측과 그것이 나에게 오직 나의 표상들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휩싸이게 됩니다. 내게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표상으로서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이러한 반성 과정은 데카르트적 성찰을 통해 파악된 주체를 무화 시킨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유가 내 존재의 근거라고 한다면, 만약 그 사유라는 것이 오로지 나의 표상으로서 나타난다. 데카르트의 주체는 자신이 주체라는 증거가 오로지 자기자신을 내세움으로서해서 결국 주체를 ‘무화’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세계 속에서의 나의 현존 양태, 그것은 자신이 주체임을 확신하게 하는 유일한 증거로 자기 자신을 내세움으로 말미암아 결국 능동적인 무화의 과정 자체가 되어버리 한에서의 주체입니다.
라깡은 하이데거의 존재의 성찰에 대하여 ‘존재 자체에 이처럼 무화의 힘을 되돌려줍니다. 혹은 적어도 이 무화의 힘을 존재 자체와 관련지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물음을 제기하지요’
메를로 퐁티는 시각 자체가 출현하는 지점을 자리매김하고자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다루면서 직관의 원천으로 되돌아가고,
정립적이건 비정립적인건 모든 반성에 선행하는 어떤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을 제안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육체가 아니라 메를로퐁티 자신이 세계의 육신이라 부른 것으로부터 시각의 원점이 출현하게 되는 과정을 복구하고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보고있는 것을 보는 환영 속에 있는 의식이
응시의 뒤집힌 구조에 기초하고 있음
메를로퐁티는 후기로 갈수록 전기철학에서 현상학적 시각이 이분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는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 현상학은 '주체(의식)-대상'[5]이 '대상'을 지시하고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데 있기 때문에, '지시하는 것'과 '지시당하는 것'의 이분법적 사유틀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즉, 메를로퐁티는 자신의 '몸' 개념을 주관과 객관, 감각과 이성의 구분이 없어지는, 이분법이 사라지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철학적 사유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물질적 몸'과 '현상학적 몸' 사이에는 '지시하고 지시당하는' 현상학적 이분법의 틀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는 것을 파악했던 것이다. 따라서 후기철학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상학' 대신 '존재론'을 가져오게 된다.
하이데거 존재론의 특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존재는 세계라는 한계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매번 자신의 선택으로 미래를 만들어가며 세계를 확장시킨다. 즉 존재는 '세계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세계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면서 세계를 변화시키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는 다시 그 속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여기서 개별과 전체는 구분되지 않으며 개념은 순환을 이루기 때문에, 지시하고 지시당하는 지향적 개념이 사라진다.
후기 철학으로 대표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메를로퐁티는, 하이데거의 이러한 존재론에 영향을 받은 '살(chair)의 개념'을 강조한다. '살'은 감각하는 피부 표면과 그 표면 밑에 숨겨진 '살'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메를로퐁티가 철학용어로 쓰는 '살'은 지각으로 느껴지는 물질적인 육체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지각 이면에 숨겨져서 보이지 않던 존재 의미가 마치 지각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피부위로 느껴지는 '지각'보다 둔하고 애매하여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몸'의 체험은 살의 존재론으로 바라볼 때, 단순히 지각된 경험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내가 컴퓨터 이미지로 산을 본 것과 실제로 등산하면서 산을 체험한 것에는 분명한 의미의 차이가 있다. 즉,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 '체험'인 것이다.
여기서 '몸의 체험'을 통해 '나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하나로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체험하지 않은 장소에서 의미를 느끼지는 않는다. 이렇게 한계지어진 존재론적 장소를 말하는 것이 '살(chair)'이며, '살'은 지각함과 동시에 그 지각의 내면에 있는 존재 의미의 다양한 가능성을 체험해주게 하는 요소(엘레멘탈)이다. 이 '살'의 세계에서 '주관과 객관', '감각과 이성'의 구분은 사라진다. 이를 피부(지각) 밑,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로 존재한다고 하여 '두께'라고 말하기도 하고, 여러 의미들이 겹쳐져서 느껴진다고 하여 '주름'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크 라깡 세미나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국역본) 7강 : 왜상 p. 125-141
“우리는 시각의 어떤 연결 통로를 따라 욕망의 장에 통합되었는지에 따라가 봄으로써, 욕망의 기능 속에서 응시가 갖는 특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의 성찰이 주체의 기능을 순수한 형태로 출범시킨 바로 그 시대에 오늘 제가 기하광학적이라는 이름을 붙여 구별하게 될 광학의 차원이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134쪽)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구성이 시각의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맹인 또한 시각의 기하광학적 공간을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136쪽)
“데카르트의 굴절광학을 보면 양 눈은 마치 두 개의 막대기가 결합되어 작용하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따라서 시각의 기하광학적 차원은 시각의 장 자체에 의해 제시하는 주체화의 본원적 관계를 완전히 규정해주기엔 한참 부족합니다.”(136쪽)
“왜상의 구조에서 원근법이 어떻게 거꾸로 사용되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137) “뒤틀림은 온갖 편집증적 다의성을 유발하는데, 아르침 볼더에서 달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그것을 사용해왔습니다. 저는 심지어 이러한 [뒤틀림에 대한] 매혹이 원근법에 대한 기하광학적 탐구가 시각에서 놓친 것을 보완해주고 있다고까지 말하고 싶습니다.”(137,138쪽)
메를로퐁티 역시 “모든 반성에 선행하는 어떤 것으로 올라갈 것을 제안”(129쪽)한다고 말한다. 거울단계에서 결정되는 신체 이미지의 상상계적 대상이 아닌 파편적 사태로서의 분열된 기관이 진정한 실재로서의 응시이다. 이를 통해 인간 주체는 시각적 주체로서 출현하기 이전에 이미 보임을 당하는 자로서 수동적인 사태이며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보는 ‘환영 속에 있는 의식이 응시의 뒤집힌 구조에 기초하고 있음을”(130쪽)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참고문헌 자크 라깡 세미나11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국역본) 7강 : 왜상 p. 12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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