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lamelle 라멜르. 박편들

분석가 담화

untold 2023. 6. 2. 15:13

분석가 담화

 

라깡은 분석가 담화의 무한성에 내기를 걸고자 한다. 실재와 언어의 대결 속에서 실재에 접근함으로써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길. 실재 그 자체의 속성, 공백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한 저자의 마지막 이야기를 덧붙인다.

“분석가 담화에서 대상a가 실행자의 위치에 있는 한, 그것은 오히려 사태를 지배하는 다른 담화의 권력을 해체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분석가 담화는 담화의 쾌락이자 가장 모호한 요소인 a를 통해 작동한다. 따라서 그것은 실재에 대하여 작용하기보다는, 실재를 둘러싼 다른 담화의 권력에 대하여 작용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분석가담화는 주인담화를 통해 구성된 의미화 장치의 유한성을 교란시키는 효과를 산출한다. 분석가 담화는 내담자의 증상을 둘러싼 주인담화의 담화 권력이 느슨해지도록 유도하며, 그리하여 종국에는 그러한 담화의 배열 자체가 변화될 것을 추구한다.”

 

분석가의 모호함에 대해 무의식의 주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모르겠다. 그의 모호함에 대한 해석을 포기한 순간 그는 대타자도 아니고 가족로맨스의 대상도 아니게 되었다. 왜 그가 저기에 앉아 있는지조차 불투명하게 느껴졌다. 그저 말의 호사를 누렸다. 상담실 외부에서는 나 자신의 고정관념을 검열하는 일도 벌어졌기에 간극이 더욱 컸지만, 더 이상 그것이 자신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타자적 욕망에 더욱 민감해져서 무의식의 비대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나를 판단하는데 자신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가의 그 투쟁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삶의 루틴이 견고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결국, 그는 종이에서 도려낸 인물이 되었다. 공백의 책이 되었다.

 

종이에서 도려낸 인물 2020-10-09

하얀색의 계단을 올라가니 막다른 골목이 나온다..

하얀 골목 어귀를 세 번쯤 돌아가는 빛의 반복,

세 번의 시도 끝에 다시 미로의 모서리를 돌 수 있었다.

하얀 그 남자가 서 있다.

나는 그 남자의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걸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남자와 나는 더 좁혀질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다.

남자는 종잇장같이 얇은 모습이다.

지난번 꿈에 침대에 앉아있는 종잇장의 얇은 남자이다.

흰 도화지를 오려서 만든 남자.

 

망상가 : 왜상의 자리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머리의 회전이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사고의 비약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어 이것이 바로 어떤 정신병적 사태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상상인 줄 알면서 그것을 마치 현실처럼 전개시키는 일들이 종종 있다.

 나는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진짜 내게 일어난 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 한가운데에 있지 않다. 조금 비껴간 자리에 있다고 할까? 왜상의 자리에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트라우마와 상관없이 기표는 홀로 작동한다.

스토리들은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한가운데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주체가 따로 있는 것만 같다. 분열의 분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