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두 얼굴

lamelle 라멜르. 박편들

쾌락원칙과 현실원칙 : 인간의 현실(프로이트 정신분석의 근본개념)

untold 2023. 6. 2. 13:19

프로이트는 우리의 정신적 기능이 두 가지 원칙에 의해 규제된다고 보았다.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은 프로이트가 심리학적 이론적 가설을 세운지 10여년 후에 다시 이론적 작업에 들어서는 계기가 된 글이다. 이 글은 초기에 내세운 이론적 가설을 검증하고, 그럼으로써 그 후에 전개될 주요 이론적 논의, 즉 나르시시즘에 관한 논의나 초 심리학에 과한 연속적인 논의 전개의 발판이 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의 주제는 ”1차 정신 과정을 규제하는 쾌락원칙과 2차 정신 과정인 규제하는 현실원칙을 구별하고 규명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 7장에서 1차 과정과 2차 과정에 대해 보다 자세한 과정을 담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조직(1차 심리적 과정)은 흥분의 양을 자유로이 방출시키는데 초점을 둔다.

두 번째 조직(2차 심리적 과정)은 자체 내에서 나오는 집중된 에너지를 통해 이러한 방출을 저지하고, 안정된 상태로 변화시키려고 한다. 프로이트는 첫 번째 조직과 두 번째 조직이 서로 다른 기제들과 결부된다고 추정하였다.

프로이트는 외적공포체험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먼저 고통을 만드는 근원이 원시적인 기관(프로이트는 원시적인 정신기관을 상정하였다)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면서 무질서한 운동성이 표출된다. 마침내 그 중의 하나가 지각과 고통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반복된다. 고통스러운 기억 형상이 어떤 식으로든 일깨워지는 경우 즉시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일차 기관 안에 존재한다. 기억 형상의 흥분이 지각으로 흘러넘치게 되면 불쾌감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과정이 과거의 고통에 대한 기억을 늘 상 회피하는 것에서 우리는 심리적 억압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쾌감의 원칙에 따라서 첫 번째 조직은 불쾌한 것은 전혀 사고 관계에 끌어들일 수 없다. 이 조직은 오로지 소원하는 것만 할 수 있다. 쾌와 불쾌를 지각하여 자동적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누적된 기억들을 자유로인 사용하는 두 번째 조직의 사고 활동은 방해를 받을 것이다. 이에 대해 프로이트는 두 번째 조직에 대해 두 가지의 가설을 세운다. 첫 번째는 불쾌감의 원칙에서 완전히 벗어나 기억의 불쾌감 따위는 개의치 않고 계속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활동이 불쾌감을 방출을 방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불괘한 기억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불쾌감 원칙이 흥분과정을 조절하기 때문에, 두 번째 조직이 불쾌감과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가능성은 제쳐둔다. 두 번째 조직은 오히려 기억에 대해 에너지를 집중하여 기억의 방출을 저지하고, 불쾌감의 방출을 억제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일차과정은 그런 식으로 축적된 흥분에 의해서 <지각동일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흥분을 방출하려고 노력하고. 이차과정은 이러한 의도를 포기하는 대신 <사고의 동일성>을 목표로 하는 다른 의도를 채택한다. 전체 사고는 목적표상으로 받아들인 충족기억에서 출발하여 같은 기억에 전과 동일한 에너지를 집중하기까지의 우회로에 불과하다.

 

프로이트는 흥분은 그것의 어떤 특징들이 쾌락-불쾌와 관련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한 직접적으로 그리고 양의 감소 없이 그 조직에 전달된다고 보았다. 우리의 심리적 과정은 이 흥분을 1차적으로는 방출하려고 하고, 2차적으로 저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1차 과정은 긴장의 완화, 고통의 해소를 위해 흥분을 방출하여 지각의 안정화를 꽤하는 반면에 2차적 심리적 과정은 이 흥분에 에너지를 집중하여 이를 저지하려고 한다.

 

꿈의 해석에서 1차과정과 2차과정으로 설명했던 이론들은 이 논문에서는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에 부합한다. 프로이트는 <억압의 과정>을 도입함으로써 신경증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 시켜주는 장치가 있다면, 내부의 불쾌한 자극을 외부의 자극인 양 취급하고 그 자극들을 외부세계로 밀어내는 <억압>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는 억압한다. 내적 욕구가 불안정 할 때, 우리가 생각한 것은 환각적으로 제시되나, 불만족, 실망을 경험하면서 환각을 포기한다. 환각 대신에 현실적 상황을 설정해야 하는 원칙이 도입된다. 그래서 <현실원칙>이 설정되는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외부세계로부터 오는 자극의 지각과 정신 기관 내부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쾌락과 불쾌의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식은 지각-의식의 조직에 공간 속에서 한 위치를 할당하는 것이 가능한다. 우리의 의식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1, 2차과정)을 모두 겪은 후에 나타는 현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의 심리가 무엇인가를 사유가 아니라 지각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쾌락원칙에 의해 조율되는 재현의 재현자 시스템을 통해서이다. 이 기능이 기표연쇄를 통한 길트임속에서 기표적 침전물을 구성해 낸다. 무언가 재현의 덩어리로서 가라앉아 무의식의 토대를 구성하게 된다. 재현의 응고물들이 표상의 침전물들이 형성되고, 이것이 무의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지각과 의식 사이를 채우면서, 지각자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현실원칙의 담화를 통해 의식과 전의식 차원에서 기능하기 때문이다.(라깡의 인간학 62P)

 

프로이트는 다음과 같이 현실원칙 설정되는 단계를 설정하였으나, 그 맥락이 쉽지 않다.

 

< 현실 원칙이 설정되는 단계 >

 

1) 주의력, 기억체계, 공정한 판단, 행동, 사고 과정 의식에 지각

외부 현실이 갖는 중요성이 증가할수록 외부세계를 지향하는 감각 기관과 그 기관에 관련된 의식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의식은 쾌, 불쾌의 특빌 뿐만 아니라 감각적 특질까지 배우게 된다. 어떤 긴급한 내적 욕구가 일어나더라도 외부세계의 자료에 낯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외부 세계를 정기적으로 탐색하는 특수한 기능 <주의력> 새롭게 시작된다. 이 기능은 감각 인상이 나타날 곳을 찾아가 의식의 중간에 맞이한다. 이와 동시에 기록체계의 도입으로 <기억> 이 생겨나고, 억압의 자리에는 기억의 흔적에 따라 <공정한 판단>이 자리잡는다.

 

또한 운동을 통한 발산에도 새로운 기능이 할당된다. <운동을 통한 발산>은 쾌락원칙의 지배하에서 정신기관에 가해지는 자극의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행동>으로 전환된다. 이를 규제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를 규제하는 것은 <사고>과정이다. 자극의 증가로 인한 긴장을 견디게 하고 운동을 통한 <발산을 연기>토록 만드는 것이다. 이 사고과정과 더불어 <리비도 집중의 일부가 전이되어 배출되는 양이 적어>지게 된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 자유롭게 전이가 가능한 리비도의 집중이 <구속된> 리비도의 집중으로 전환될 필요성이 대두되는데, 이것은 <전체 리비도의 집중 과정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아마도 사고의 과정은 그것이 단순한 표상 재현의 수준을 넘어서서 대상에 대한 여러 인상들과의 관계를 지향하는 한 무의식적인 것 같다. 그리고 사고 과정이 의식에 지각되는 그런 특질들을 획득하려면 그 과정이 <언어적 잔재>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같다.

 

프로이트는 정신기관에 들어온 새로운 요구(자극)에 대해 현실원칙은 <사고과정>을 통해 집중된 리비도를 구속된 리비도의 집중으로 전환시킨다고 말한다. 구속된 리비도의 집중은 억압의 표상이고 억압을 표지하는 기표가 상정되어 의식으로 지각된다고 이해된다.

 

프로이트가 말한 언어적 잔재는 무엇일까?

라깡의 설명하는 쾌락원칙은 만족을 환각 속에서 지속시키려는 경향이라고 할 때 기표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기표는 만족의 흔적으로 표상의 대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표를 통제하는 것이 상징계(현실원칙)이며, 이것은 필연적인 권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기표는 상징계 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억압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언어적 잔재는 라깡에게 기표를 의미하는 듯 싶다.

 

(2) 정신기관의 일반적 성향은 쾌락 추구

 

프로이트는 경비(에너지) 절약이라는 경제원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정신기관의 일반적 성향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쾌락의 근원을 붙들고 늘어지려는 데서, 그리고 그런 쾌락의 근원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 원칙의 도입과 더불어 사고 활동의 부류가 떨어져 나가면서 현실성 검사에서 벗어나게 되고 오로지 쾌락 원칙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 사고 활동이 바로 어린아이들의 유희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백일몽>으로 계속되다가 현실 대상에 대한 의존을 포기하게 만드는 <환상>이다.

 

 

(3)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하는 과정

: 성적본능 자가성애 잠재기 (쾌락원칙의 지배)

: 성적본능과 환상(상상) 대 자아본능과 의식과의 밀접한 관계

 

관련된 모든 정신적 결과들과 더불어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하는 일은 어느 한순간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발생하는 일도 아니다. 그 이유는 그 대체과정이 자아본능에서 진행되는 동안 성적 본능이 자아본능에서 이탈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성적본능은 자가성애적인 태도를 보인다. 말하자면 주체 자신의 신체에서 만족을 얻기 때문에 현실원칙의 도입으로 만족의 좌절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대상을 찾는 과정이 시작되면서 성적본능은 곧 긴 잠재기 상태로 도입되고, 사춘기까지 계속되는 이 기간에 성적 발달은 지연된다. 이 두요소 자가성애와 잠재기의 결과로 성적본능은 그 정신적 발달이 지연되고 비교적 오랜 기간 쾌락원칙의 지배를 받게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한편으로는 성적본능과 환상사이에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 본능과 의식의 활동사이에 어떤 밀접한 연관관계가 형성된다. 이 연관관계는 심리학에서는 2차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건강한 사람이나 신경증 환자 모두에게서 이 관계는 밀접하다. 자가성애가 지속되는 동안 성적대상과 관련하여 노력과 기다림(만족이 연기)을 요하는 현실적인 만족보다는 좀 더 손쉬운 순간적이고 상상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성향이 장기간 그대로 유지된다. 환상의 영역에서는 억압이 전권을 행사한다.

 

억압은 어떤 표상의 리비도 집중이 불쾌감을 조장할 경우 그 표상이 의식에 의해 감지되기 전에 표상을 <원상태 그대로> 억제하는 과정이다. 이 부분이 바로 우리 정신기관의 약점으로 이미 이성적인 것으로 판명된 사고과정을 다시 쾌락 원칙의 지배하에 두는데 활용된다. 그러므로 신경증발생의 근본 원인이 되는 정신적 기질이란 성적 본능으로 하여금 현실을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지연시키는 데서 그리고 부차적으로 그와 같은 지연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원상태로 억제한다는 것은 쾌락에 대한 리비도의 집중, 그 총량은 그대로 억압된 것은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으로 보인다.

 

(4) 어쩌면 현실원칙은 쾌락원칙을 보호한다.

 

쾌락자아가 <소망>만 할 뿐이며, 쾌락 생산에만 매진하고 불쾌는 회피하려고 노력한다면 마찬가지로 현실자아는 <유용한> 것만을 추구하고 손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사실은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한다 해서 쾌락원칙을 완전히 폐기해 버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원칙의 대체가 쾌락원칙을 보호한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불확실한 어떤 순간적인 쾌락을 포기되지만 그것은 새로운 길을 통해서 나중에 더욱 확실한 쾌락을 보장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으로 대체하는 그와 같은 일은 정신 내부에 너무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종교적 신화에도 반영되어 있다. (세속적 욕망을 포기하면 내세에 보상) 이런 노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가운데, <종교> 는 내세에 보상을 약속하는 방법으로 현세의 쾌락을 완전히 포기하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쾌락원칙을 극복하는 일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이 바로 <학문>이다. 그러나 학문 역시 지적인 쾌락을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실제적인 이득을 획득케 해준다는 점에서 쾌락원칙을 철저히 극복하지는 못한다.

 

(5) <교육>은 쾌락원칙을 극복하고 그것을 현실 원칙으로 대체하게끔 하는 동기라 할수 있다.

 

(6) <예술>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쾌락원칙과 현실 원칙, 이 두 원칙을 화해 시킨다.

 

예술가는 환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이 야심에 가득 찬 소망과 성애적인 소망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외부세계에 어떤 현실적인 변화를 꾀하는 긴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서도 자신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 왕이되고, 창조주가 되고.. 것이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강요된 포기와 그에 뒤따르는 불만을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쾌락원칙을 현실 원칙으로 대체함으로써 비롯된 그와 같은 불만이 현실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7) 우리의 기질은 어떤 억제의 구조를 가졌느냐가 아닌가?

 

자아가 쾌락자아에서 현실자아로 변화를 겪는 동안 성적본능은 여러가지 중간단계를 거쳐 최초의 자가 성애에서 생식에 기여하는 대상애로 전환되는 변화를 겪는다. 이 두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 단계가 나중에 신경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기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옳다면 차후의 질병의 형태가 자아와 리비도 발달의 특정 국면에서 어떤 억제가 일어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따라서 자아와 리비도의 발달과정이 연대기적 특징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의미가 부가될 수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 연대별 발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도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8) 무의식과정의 기이한 특징은 그 과정이 현실성 검사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사실에서 알수 있다. 마치 이전의 쾌락원칙의 지배하에서 자동적으로 그랬듯이, 생각으로 그려낸 현실을 실제 외부의 현실과 동일시하면, 소원을 그것의 충족과 동일시 한다. 따라서 무의식적 환상과 무의식적인 것이 된 기억을 구별하는 일 또한 어렵게 된다.

 

현실원칙은 간단히 말해서 의미화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또한 주이상스의 억압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주이상스를 억압하는가.. 라깡은 부인의 형식을 통해 주이상스를 억압하려고 한다. 마치 없는 것처럼 말하는 방식이지만 그로 인해 주이상스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역설을 가지게 된다.

 

이로부터 쾌락- 현실원칙이란 상징계의 통제와 억압의 기능이며, 심리장치에서 쾌락의 길트임의 흔적은 이 원칙들이 기능하는 가운데 무의식에 남겨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같은 관점에서 쾌락-현실원칙이 둘러싼 심리의 중핵에 충동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것의 우위에 관한 논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로 저자의 강의는 마무리된다.

 

그 보편적 환상의 토대에는 큰사물이라는 근본적 대상에 대한 환각이 작용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라깡은 큰사물은 참조의 시스템으로서 이것이 없다면 의식도 존재할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참조의 시스템으로서 환각작용을 하는 무언가가 없다면 어떤 지각의 세계도 실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질서화되거나 구조화되지 못할 것입니다. 프로이트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지각의 세계는 이와 같은 근본적 환각에 종속되어 있으며 이것 없이는 어떠한 의식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58P)

 

 

이 글의 주체는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을 구별하고 규명한 것이다.

 

 

 

신경증 환자들이 현실에 등을 돌리는 것은 현실, 혹은 현실이 어떤 부부늘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경증환자와 모든 인간의 현실과의 관계

 

분석을 통해 그 독특한 특성이 알려진 무의식의 정신과정 - 원초적 1차과정

 

1차과정 쾌락-불쾌의 원칙, 쾌락원칙

 

원초적인 1차의 정신과정들은 쾌락을 추구한다. 불쾌를 조장하는 사건은 억압

 

내적 욕구가 심리적 안정을 해치게 될 때 우리가 생각한 것(소망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날 우리가 매일밤 꿈-사고를 통해 겪는 것과 같은 환각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족을 얻어내지 못하고 실망을 경험하게 되면서 환각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정신 기관은 환각을 통한 만족 대신에 외부세계에서 현실적 상황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 그런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신 기능의 새로운 원칙이 도입되는 것이다. 정신에 제시되는 것이 유쾌한 것이 못 되지만 설혹 그것이 불쾌한 것이라도 현실성은 그런 것이다. 이런식으로 현실원칙이 설정되는 단계는 아주 중대한 단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기준을 억압된 정신 구조에 적용시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증상 형성 과정에서 환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신경증 환장의 경우 바로 신경증 환자의 화례를 사용해야 한다.

 

<오랜 질병을 앓았던 자기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 예전과 다름 없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는 자기아버지가 그 사실도 모른채 실제로 이미 죽었다는 것에 지극히 고통스러워하는 꿈을 꾸었다>

 

-> 그의 소망의 결과로 자기 아버지가 실제로 이미 죽었다는 그가 바랐던 것처럼 그 사실도 모른채 > 즉 아버지가 죽었으면 바랐던 그의 어쩔수 없는 소망이 그에는 고통스러운 회환으로 남아 있으며, 그런 사실을 아버지가 눈치 챘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그와 같은 소망의 근원은 자기 아버지가 죽었으면 바라던 유아기때의 소망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수 있다.

 

 

 

202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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