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꿈에서 압축과 전치를 사용하여 무의식의 과정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이 이론에 입각하여 나의 꿈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가장 최근에 꾼 꿈이다.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친구네 집에 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친구네 집이다. 친구네 집에서 올려다본 천장에 큰 물고기. 사람만큼 큰 물고기가 머리위에서 왔다갔다 했다. 한 5마리 쯤 되려나. 나는 어떻게 천장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가 했는데, 사람인 우리도 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었다. " 물에서도 숨을 쉴 수가 있지." 마치 그 사실을 잊었다가 생각이 난듯 친구에게 말했다. 거실과 방에 유유히 큰 물고기가 떠다닌다.
물고기꿈 이후에 또 하나의 꿈을 꾸었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들판을 걷는다. (아버지는 전맹이다) 아버지는 검은모자를 쓰고, 바람부는 들판을 걸으며, 음악소리를 듣는다. 낯익은 음조. 멀리 학교에서 들리는 것 같다. 아버지는 한 오피스텔로 나를 데려갔다. 내게 불쌍해 보였던 그였는데, 그 오피스텔에 검은 모자를 쓴 그가 달라보인다. 그는 불법적인 일을 도모하거나, 도와준 댓가로 받은 오피스텔이였다. 거기에는 아줌마들이 몇 명이 있다. 나는 부담을 느낀다. 그 때 초인종 소리와 함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덩치가 큰, 거의 거인과 같은 백발의 숏컷 할머니가 나체로 서있었다. 그 할머니는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았고, 성큼성큼 그 방으로 들어와서 물이 뚝뚝떨어졌다. 공포와 함께 잠이 깨 버렸다.
이렇게 오랜 만에 기이한 꿈을 꾸고 나서는 다시 꿈이 닫혀 버렸다.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런 장면들이 연출이 되었는지는 알 것 같다. 낮의 잔재들이 꿈의 재료로 쓰였다. 정신분석을 받을 때 꿈에 사용되었던 소재들은 비일상적인 것들이 많았고, 왜 등장했는지 알 수 가 없는 꿈들이 많았다. 그러한 꿈은 무의식에 가까운 꿈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의 꿈들은 보다 평범하고 일상에서 소재를 가져와 이 꿈이 마치 현실을 반영한 것 처럼 보인다. 어떤 꿈들은 낮에 일들을 그저 재현하기도 한다. 일기처럼.
프로이트는 꿈에서는 '압축과 전치'의 규칙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먼저 압축은 꿈에서 드러난 재료와 우리의 숨겨진 사고사이에는 '분량'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를 1분으로 압축한다면 의미의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우리는 숨겨진 사고의 차원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물고기 꿈을 보자.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천장의 떠다니는 물고기이다. 이는 전날 아쿠아리움을 지나가면서 천장에 떠다니는 물고기를 스쳐지나가면서 본 기억이 배치된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친구, 나는 그 친구의 언니 블로그를 전날 보면서 그 친구를 생각했을 수 있다. 그리고 몇 년만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기 때문에 '물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있다'라는 스쳐지나간 생각이 이러한 문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여러가지의 상황들이 중첩되고 압축되면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무의식에서 '숨겨진 사고'는 무엇일까. 프로이트는 이 숨겨진 사고는 명시적 내용의 차원에서 '누락'이 많다고 말한다. 이 꿈에서 무의식적 사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을까? 의미차원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큰 물고기, 물, 숨,,, 그 어떤 것도 일대일 대응의 상징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상상계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의 기억은 왜곡될 가능성도 많다. 이 꿈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문장과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이지 않을까. 그러나 무의식은 항상 '성충동'를 반영한다고 본다면, 이 꿈은 물고기 팔루스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은유로서 숨을 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쉴 수 있다는 '자기기만'에 대한 꿈일 수도 있다.
이제 두 번째 꿈을 살펴보겠다.
나의 아버지는 작년에 완전히 전맹이 되어 최근 주말에 아버지를 일주일에 한번씩 돌보고 있다. 복잡한 가정사가 있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아버지는 지금 혼자이고, 나는 그를 몇 십년만에 돌보고 있는 것이다. 나의 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였던 훼손된 팔루스가 실제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가까운 부녀사이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 싫지많은 않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 들었던 생각들이 이 꿈에 반영이 된 듯한다. 처음에 풍경이 좋은 들판이 배경으로 등장하다가 보지 못한 아버지를 배려하여 음악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곧 그의 실체를 나는 알게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검은모자에 뭔자 합법적이지 않은 일로 댓가를 얻었으며, 여러 여자들이 있고, 갑자기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문을 두드리는데, 나는 놀라고, 뭔가 나쁜 짓을 한듯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모습이다. 아마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숨겨야 할 일이자,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다. 키가 너무 커서 천장을 닿을 듯한 덩치가 큰 여자, 몸을 구부려서 방에 들어오는데 그 여자는 백발의 숏컷, 그리고 방금 샤워한 듯 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이 공포스러워 급기야 나는 잠이 깨버린다.
프로이트는 '압축'과 함께 꿈에는 '전치'의 과정이 있다고 설명한다. 전치는 가치의 잠재된 사고의 내용과 명백한 내용 사이의 변형, 즉 가치의 역전, 잠재적 사고 안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했던 것을 명시적 내용차원에서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층결정을 통해 덜 중요한 요소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검열때문이기도 하다. 꿈사고에서 중요한 내용이 꿈에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고기가 심리적 표상으로서 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꿈 - 작업에서 심리적 힘이 표출된다는 생각이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이 힘은 심리적으로 가치가 높은 성분들의 강도를 박탈하는 한편, <중복결정을 통해> 가치가 적은 성분들에게는 꿈-내용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준다. 그 결가 꿈-내용 텍스트와 꿈-사고 텍스트의 차이로 나타난다. 우리가 가정하는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꿈-작업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이 과정에는 <꿈-전위>라는 이름이 합당하다. < 꿈-전위와 꿈-압축>은 꿈-형성을 주로 담당하는 두 명의 공장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꿈-전위의 사실에서 표현되는 심리적인 힘 역시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위의 결과는 꿈-내용이 꿈-사고의 핵심과 같지 않으며, 꿈이 무의식에서 일안 꿈-소원의 왜곡만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꿈 왜곡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사고 활동의 한 심리적 장치가 다른 장치에 행사하는 검열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꿈-전위는 이러한 왜곡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 중의 하나이다. <그것에 의해 이득을 보는 쪽이 그것을 행한다> 우리는 꿈-전위가 검열의 영향, 즉 심리 내적인 방어를 통해 이루진다고 가정할 수 있다. (프로이트 「꿈의 해석」꿈-작업 2.전위 中
전치는 프로이트에 따르면 전치는 꿈-내용 텍스트와 꿈-사고 텍스트의 차이로 일어난다. 꿈의 내용과 꿈-사고는 전혀다른 것이다. 꿈의 내용과 심지어 반대일 수도 있다. 이러한 왜곡은 검열이자 실재에의 방어의 결과라고 프로이트는 가정했다.
두 번째 꿈에서 전치(전위)된 것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실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일까? 아니면 '백발의 덩치 큰 여자'일까? 그녀는 내 무의식 속에 거세되지 않은 어머니, 충동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실제의 어머니가 아닌,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어머니, 방금 출산한 듯 물이 뚝뚝흐르는 몸의 등장은 실재가 꿈을 뒤흔드는 것만 같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옆의 자리를 차지할 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우려 일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공통점'을 지닌 혼합인물로서 '백발의 여자'라면, 그 인물은 거세되지 않은 어머니와 실제의 어머니가 혼합된 인물로서 전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어쨌든 꽤 오랫동안 꿈을 꾸지 않다가 꿈을 연달아서 꾼 것은 금연으로 인해 잠시 억압이 풀려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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