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차원에서 소외감은 삶의 공허감과 같은 말처럼 쓰인다. 주인의 반대말 처럼도 쓰인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여 몸을 느끼는 것일까. 소외는 일종의 정동이지, 실체가 아니다. 소외의 효과로서 우리는 '자아'를 찾겠다는 일념을 지니게 된다. 언어로 거세된 존재의 분열은 '진실게임'에 들어선 것이다.
타자를 치는 나의 손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다. 머리 중앙에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는 나. 나의 시선은 카메라와 스크린의 두 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열된 상황을 소외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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