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담화

대한민국의 우울적 자리

untold 2024. 12. 22. 23:14

대통령의 편집-분열 자리와 대한민국의 우울적 자리

 

 

들어가는 말

 

처음 멜라니 클라인의 논문을 접하고 다른 논문들과 달리 그 문체가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클라인은 때로는 드라마로, 때로는 독백으로 작두를 탄 듯 글을 써내려간 것만 같았다. 마치 빙의한 것처럼 유아의 무의식을 통과하는 듯 느껴진다. 클라인은 무의식 속을 탐사하면서 이론을 전개하지만, 그것이 신비주의나, 낭만주의가 아닌 순환되는 개념 속에서 프로이트를 넘어 독창적인 이론을 말년까지 구체화하고 있었다. 특히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아동의 정신세계를 탐사하면서 그녀가 접근한 아동의 무의식 덩어리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론의 창조적 전개를 통하여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론적 깊이에 개인적 감동의 지점도 있었음을 미리 고백한다. 클라인의 이론의 기본전제는 우리는 죽음충동, 죽음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파괴적 본능은 외부의 대상과 만나면서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대상과의 관계 맺기의 정도에 따라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와 고통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이 발견한 세계는 우리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틀로써,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아동의 정신세계를 탐사하면서, 접근한 아동의 무의식 덩어리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창조적 이론 전개를 펼쳐나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글에서는 멜라니 클라인의 주요 개념인 초자아, 편집-분열자리와 우울적 자리를 살펴보고, 오늘날 한국의 정치상황을 멜라니클라인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고자 한다.

 

아동정신분석

 

멜라니 클라인은 아동정신분석을 통해 아이들도 성적 충동, 불안, 좌절을 겪는다고 보았다. 그녀는 작고 단순한 장난감을 사용한 놀이 등을 통해 아동의 무의식에 접근했다. 성인들의 무의식이 말실수, , 재담등을 통해서라면, 아동의 무의식은 놀이를 통해 억압된 아이의 경험과 고착에 접근하여 근본적인 영향을 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녀가 밝혔듯이, 이것은 성인 정신분석과 기법의 차이이지 근본적인 원리의 차이는 아니다. 그러나 처음 접해본 그녀의 아동 정신분석에 대해 여러 의문점도 들었다. 논문에 따르면, 아동들 아동들에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이해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멜라니 클라인은 해석의 필요성을 줄곧 강조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하는 해석은 어떤 것인가? 그 해석은 활성화된 정신적 층위, 무의식에 도달해야 하는 해석이다. 그녀는 예를 들어, 페터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고 한다. “나는 첫 번째 장난감 남자는 폐터가 어머니의 침대로부터 끌어내어 죽이기를 원하는 아버지이고, 두 번째 장난감 남자는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죽이기를 원하는 폐터 자신이라고 해석했다그녀는 자신의 해석을 과연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했을까? 이 문장 그대로 전달했을 때, 과연 페터는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멜라니 클라인은 43개월의 아동 환자 루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잔 속의 공과 지갑 속의 동전 그리고 가방 속의 내용물이 모두 어머니의 배 속에 있는 아기들을 의미하며, 루트는 더 동생이 생기지 않도록 그들을 무사히 가둬두기 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이와 같은 해석의 효과는 놀라웠다고 말하는데, 이 해석이 긍정적 전이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불안 발작은 있었다고 말한다. 루트에게 그녀는 루트가 얼마나 어머니를 선망하고, 또 증오하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음경과 어머니 속에 나온 아기들을 훔치고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루트에게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루트는 아동이므로 그녀에 해석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를 믿고 따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불안에 대해 어떤 개인적 서사를 부여해 줬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납득 할 만한 것이던 그렇지 않던, 루트의 증상이 완화된 것은 선생님의 하나의 이야기가 일시적으로 불안을 메꾸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영구히 효과가 있는 것일까? 임상 상황에서 아동의 수준에서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하지만, 실제 어떠한 언어로 멜라니 클라인이 아동과 대화를 했는지, 찾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말년에 멜라니 클라인은 임상자료를 기록한 저서를 출판하려고 계획한 듯하다.

 

초자아의 기원

 

멜라니 클라인은 초자아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단계가 아니라 초기부터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초자아나 자아가 프로이트가 상정한 시기보다 이르며, 거의 태어나면서 생긴다는 것이 클라인이주장이다. 생후 초기에 겪는 구강 좌절이 오이디푸스적 충동을 방출하고 그와 동시에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구강 가학증이 아이의 파괴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로 인한 결과로 보았다. 이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죽음 욕동이라고 생각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미충족된 리비도는 불안 또는 분노의 양태로 변형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리비도가 왜 파괴적인 속성을 띠는가?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우리는 출생이란 사건 자체가 긴장과 고통을 가지고 오는 것이며, 이것은 아이에게 가학적 욕동을 일으킨다. 자아는 이 욕동 자체를 위험으로 간주하게 되고, 내부의 불안이 된다. 다시 말해, “불안은 공격성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 위험을 파괴적 본능을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것으로 전제한다.

 

인간은 파괴성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프로이트는 죽음 욕동을 그의 대상을 향해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그 유기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라고 말한다. 멜라니 클라인 역시 아이는 그 파괴적 욕동을 외부를 향해 방출하고, 일부는 내부를 공격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유기체 보존을 위해 내부를 향한 파괴적 욕동의 일부는 그 자신의 욕동을 제압하는 형식으로 띤다. 그러한 분열로써 유기체를 보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자아는 일종의 방어기제의 결과인 것이다. 이는 부모와 같은 초자아의 등장에 앞서는 다른 초자아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이를 함입된 대상이 유기체 내부의 파괴적 충동을 방어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함입된 대상이 그 즉시 초자아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함입된 대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아에게 함입된 대상은 어머니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어머니는 아이에게 내적 충동을 투사하는 외적 위험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대신 어머니를 파괴하고자 하는 환상이 생겨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은 어머니에서 어머니의 몸속으로 확대되고 어머니의 몸속의 음경은 곧 아버지 표상을 가르친다. 멜라니 클라인은 6개월에서 12개월 사이의 영아의 가학적 환상에 대해 언급한다. 멜라니 클라인은 아동의 가지는 부모의 성교에 대한 무의식적 지식역시 가학증을 강화한다고 보았다. 부모의 성교로 인해 하나로 결합한 부모는 더 위협적이므로, 아동은 부모에 대해 죽음의 소망을 갖게 된다. 죄책감의 기원은 프로이트가 말한 최초의 근친상간적 욕망뿐만 아니라 아이의 이러한 파괴적 충동일 것이라고 멜라니 클라인은 본 것이다.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아이의 가학적 성향을 부추겨서 외부로 향하도록 하여, 외부의 대상을 더욱 공격함으로써 내부를 지키려는 본능으로 보인다. “증오가 사랑보다 먼저라는 프로이트의 관점에도 부합한다. 자아의 입장에서 파괴욕동, 죽음욕동은 잔인한 적이므로 이것은 강렬한 불안을 낳는다. 아버지는 오히려 이러한 불안에 대한 방어로 기능한다고 멜라니 클라인은 말한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되면서 초자아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이른 시기에 나타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초자아가 보다 원시적이고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 마음의 형태는 원시적인 환영 같은 이미지와 환상 그리고 공포가 끊임없이 표류하며 만화경처럼 흘러가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녀는 아이와 어른 모두 항상 불안하고, 유동적인 정신병적 불안을 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죽음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면서 자신 안에 있는 공격성을 방어하기 위해 분열의 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이 시기에 아기는 구강 가학성이 외부에 투사되기도 하고 내사되기도 한다. 내사된 공격성은 아직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젖떼기 경험을 통하여 아기는 나쁜 젖가슴에 대한 박해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아기는 자기가 엄마를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면서 죄책감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죄책감은 초자아의 산물이다. , 초자아는 구강-가학적인 공격성이 내사된 것이며, 초자아와 자아의 긴장 상태에 죄책감이 발현된다고 본 것이다.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부모의 모습을 내재화한 초자아이다. 오이디푸스 갈등 속에서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한 요구를 억압하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 초자아라면,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아버지의 개입 이전에 초자아이다. 오이디푸스 경향도 생후 2~3개월경 이유기를 겪으며 느끼는 좌절의 결과라고 보았다. 항문기를 거치며 다시 강화되며, 박해불안과 죄책감을 동반하게 된다. 아이의 초자아는 어머니의 젖가슴, 즉 좋은 대상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크게 관련이 없는 듯 보인다. 아이는 나쁜 젖가슴에 대한 공격성으로 자신이 보복당할까 두려워한다. 이 점 역시 어머니의 통합 이전의 시기로, 아이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격에 대한 죄책감을 양산하며, 이를 멜라니 클라인은 초자아의 등장에 따른 결과로 본 것이다. 이 초자아의 성격은 어떠한가? 프로이트의 초자아는 양심과 윤리, 즉 아버지의 법에 기반하고 있으나, 멜라니 클라인의 초자아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내적 충동을 투사하는 외적 위험으로 아기는 자신을 파괴하는 대신 어머니를 파괴하고자 하는 환상이 생긴다. 이 불안과 죄책감은 근친상간적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파괴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초자아는 아이를 억제하는 부모와 같은 초자아가 아니라, 아이를 위협하는 초자아이다. 초자아는 아이를 물어뜯고 삼키는 존재이며, 내사한 공격성이 마치 외부의 대상이 내부에 함입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부의 공격을 피하고자 초자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유아기 때부터 자아와 초자아의 분열은 극심한 듯 보인다. 취약한 자아는 성적 호기심과 초자아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 아이의 부족한 언어 능력, 신체에 대한 성적 호기심은 해결되지 못한 채 증오를 불러일으킨다. 아이의 인식애적 충동은 가학성과 관련되어 있으며, 어머니에 신체에 관하여 알고자 하는 욕망은 소유의 욕망으로 바뀌면서 오이디푸스 갈등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더해진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경향이 아이의 욕망 금지를 받아들이는 거세의 과정을 포함한다고 했을 때, 멜라니 클라인에게는 그 욕망이 공격성이라 생각된다. 오이디푸스 갈등의 초기 단계(1928)에서 클라인은 조기 오이디푸스가 가학성이 발달하는 시기에 이미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오이디푸스적 경향은 어린아이가 젖떼기에서 경험하는 좌절의 결과 때문에 생기기 시작하며, 생후 2년째 모습을 드러낸다.”(재인용). 이 구순기의 좌절은 남아든, 여아든 상관없이 모두 엄마에 대한 강한 공격성과 분노하게 된다.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거세자가 되고, 이러한 좌절로 인해 어린아이는 엄마의 가슴, 생식기 등을 시기하고 사디즘이 발달한다는 것이다.이 공격성이 내재화되어 초자아가 아이를 위협한다. 프로이트적 초자아와 성격이 다른 이 초자아는 가혹한 초자아이다. 1928년 멜라니 클라인은 논문에서 죄책감은 초자아 형성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초자아는 부모가 제시한 법에 따라 종속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원칙을 앞서는 죽음 충동에서 비롯된 방어기제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초자아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와 같은 초자아와 반복강박을 지시하는 초자아, 죽음충동을 향해 움직이는 초자아가 공존하는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로이트와 멜라니 클라인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본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동물적인 소원, 보복에의 두려움, 죄책감과 씨름하는 존재로 보았지만, 클라인은 인간을 멸절에 대한 깊은 공포(편집증적 불안)과 완전히 버림받는 것(우울 불안)에 대한 공포와 씨름하는 존재로 보았다.”

 

멜라니 클라인은 리처드를 분석하면서 오이디푸스 갈등의 국면이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관찰한다. 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사랑, 아버지에 대한 질투와 증오 등의 우울적 자리와 편집-분열적 자리의 퇴행을 왕복하면서 자신의 환상과의 타협을 통해 어느 정도 긍정적 오이디푸스 상황과 이성애 발달이 진행되었다. 클라인은 정신분석학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독보적인 개념인 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적 자리 이론을 창시했다. 그녀는 단계가 아니라 자리(position)로 명시한 것은 단계적인 발달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형태가 이 두 가지의 자리에서 왕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우울적 자리를 발견한 후에 편집-분열적 자리를 발견하는데, 본 글에서는 생후 초기에 먼저 나타나는 편집-분열적 자리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분열적 자리

 

 생후 초기에 아이의 세계는 두 세계로 분리되어 있다. 좋은 젖가슴의 세계와 나쁜 젖가슴의 세계이다. 나쁜 젖가슴은 좋은 젖가슴의 부재이며 이는 박해와 고통의 세계이다. 아기는 이 나쁜 젖가슴을 미워하고, 보복 환상에 사로잡힌다. 초기에는 이 두 세계를 따로 떼어놓는 것이 문제가 된다. ,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이 분리되어야 한다. 나쁜 젖가슴에 대한 파괴적인 분노는 나쁜 젖가슴에만 해당하여야 하지, 조금이라도 혼동하면 좋은 대상도 파괴하게 된다클라인은 유아-초기의 이러한 경험체계를 "편집-분열적 자리"라고 명명하였다. 편집증은 피해의식에 따른 두려움이고, 분열증은 이에 대한 방어로서 자신을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의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쁜 젖가슴은 아이의 환상이 창조한 것이다. 신생아들에게 죽음본능은 '임박한 파멸'에 대한 불안이다. 이 불안은 자신의 공격성이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 "박해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아는 자기에게 향한 공격성의 일부를 외부로 투사하여 나쁜 젖가슴을 창조"한다. “박해불안은 아이 자신의 사디즘 또는 공격성 투사의 결과라는 것이다. 죽음본능이 없다면 나쁜 젖가슴을 창조할 수도 없을 것이다.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유아의 악의는 타고난 공격성에 의해 시작되지만, 좋은 환경은 그 공포를 완화한다고 보았다유아의 이분법적 세계는 양가성의 기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젖가슴과 대면은 물리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 물리적인 상황은 아기에게 '좋고, 나쁨의 원형'이 되는 무의식을 양산한다. 좋은 대상은 만족을 주고, 나쁜 대상, 즉 불만족의 대상은 공격, 파괴 등 가학성을 띠게 만든다

 

 박해환상과 우울적 자리

 

  구강 가학증으로 인해 아기의 공격성, 파괴성이 나쁜 젖가슴을 만나 돌출될 것이다. 아니면, 나쁜 젖가슴이라는 외부의 대상을 만나, 구강 가학증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편집증성 불안은 갖게 된다. 나쁜 대상이 자신을 위협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박해자를 가정하게 만든다. 이 박해자를 방어하기 위해 아기들은 내사 또는 투사를 하게 된다. ‘박해자는 아기를 위협하는 일종의 두려움인데, 아기의 내부에서 생겨났지만, 외부로부터 박해를 받는다는 박해망상의 기원이 되는 듯하다. 우울적 자리는 편집증적인 불안의 자리에서 아이가 어머니가 나쁜 대상과 좋은 대상을 다 가지고 있는 통합적인 존재로 받아들이는 관계이다이 단계는 신경증과 편집증의 고착점 사이에 있다. 통합적 존재로 인식했을 때는 신경증으로, 그렇지 못했을 때 편집증으로 전개된다. 클라인에 따르면 강력한 불안은 정신병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멜라니 클라인은 사랑하는 엄마를 내면화하는 동시에 어떤 불안을 느낀다고 보았다. 그 불안은 자신의 가학적 충동이 대상을 헤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가정이라면, ‘구강-가학적 충동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충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비롯된다.”라고 한다. 강박증자의 의심은 자기 자신의 의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기들은 혹시나 자기가 사랑하는 엄마를 해치지 않을 하는 강박. 아기 두려움은 내면이 만들어낸 괴물, 그 박해환상 때문에 우울하다. 유아는 태어나서 젖가슴이라는 부분 대상으로 대상과 관계를 맺는다. 이때 젖가슴은 아기에게 좋은 젖가슴이거나,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는 박해적인 젖가슴으로 분열되어 있다. 6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어머니라는 전체 대상을 통합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시기를 우울적 자리의 시작이라고 멜라니 클라인은 말한다. 그녀는 왜 통합적 인식이 우울한 결과를 낳는다고 본 것일까? 그동안의 부분 대상은 어머니에게 내사되는데, 좋은 대상을 내사한다면 아이가 만족감만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되는 바와 달리 대상이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사랑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대상에 대한 상실감 또한 하나 전체로서 느껴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 상실은 사랑의 상실감이다. 상실감은 좋은 것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다. , “자신의 좋은 내면화된 대상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느낌때문이라는 것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최초의 사랑에 이어 즉각적인 상실감이 찾아온다. 왜냐하면 아기의 마음에 내면화된 가해자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울적 자리에서 유아는 나쁜 대상이 이제 환상적 박해자가 되어 어머니가 이를 보호해주거나, 동시에 공격받는다라고 느낀다. 아이가 타자를 좋고 나쁜 것으로 분리하는 대신 하나의 전체로서 경험하게 됨으로써 많은 이익이 얻어진다. 아이는 자기의 고통과 좌절이 순수한 적의와 악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오류와 불일치 때문에 생긴 것임을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로 편집적 불안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박해의 위협이 감소함에 따라 분열의 필요성도 줄어든다. 유아는 자신의 외부나 내부의 힘들에 의해 파멸되거나 오염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러나 아이가 편집-분열적 자리를 벗어나게 되자 새로운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클라인에 의하면 생의 주된 문제는 공격성을 안전하게 담아내고 통제하는 것이다.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공격성은 나쁜 젖가슴과의 증오스러운 관계에만 제한된다. 공격성은 좋은 젖가슴과의 사랑하는 관계로부터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 유아가 좋거나 나쁜 경험들을 전체 대상과의 양가적인 관계로 한데 묶기 시작하면서 편집-분열적 자리가 제공했던 평정은 깨어지게 된다. 이제 유아의 적대적 환상 속에서 파괴되는 것은 나쁜 젖가슴이 아니라 유아를 잘 돌보지 못함으로써 유아를 갈망하게 하고 좌절시키고 분리시키는 전체 대상으로서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유아가 느끼는 불안은 나쁜 대상뿐만 아니라, 좋은 대상을 파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강렬한 공포와 죄책감을 우울 불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유아가 전체 대상을 향하여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조직을 우울적 자리라고 명명하였다.

 

우울적 자리의 방어기제

 

우울적 자리에서 박해불안우울 불안사이를 끊임없이 오가기 때문에 유아는 고통스럽다. 이 우울적 자리는 아이에게 새로운 방어기제를 발달시키는데, 이전 방어기제가 분열, 이상화, 축출, 멸절이라면, 여기에 추가하여 조적 방어기제를 형성한다. 조적 방어기제는 부인과 맹점화를 통하여 심리적 실재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전능화, 경멸, 승리감을 갖게 한다. 조울증에서 조증 상태는 자신에 대한 전능감, 승리감, 타인에 대한 경멸의 상태를 보여준다. 또한, 애도에 관해서는 무의식적 경멸과 승리감역시 상실에 대한 방어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상태는 애도의 기간이 길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아이는 사랑하는 대상이 유일하다는 것과 자신이 그 대상에게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어머니, 아버지, 연인들은 쉽게 떠나버린다. 그들은 다 똑같다. 자신이 무기력하게 대상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하여, 또 그 대상들에 대한 통제력을 얻기 위하여 아이는 타자의 개성들을 일반화시켜버리고 일시적으로나마 환각에서 위로를 얻는다.

클라인은 비정상적인 애도와 조울상태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애도에서도 유아기의 우울은 재활성화된다고 보았다. 성인기의 우울은 우울적 자리의 재활성화 상태이다. 멜라니 클라인은 우울적 자리의 과제를 좋은 대상의 내사를 안정적으로 확립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좋은 부모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울적 자리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 창조성, 승화가 도입된다. 멜라니 클라인은 자아가 좋은 내적 상태를 재창조하고 전능감을 포기하면서 외적 대상들을 복구하려고 노력할 때, 자아는 풍성해지며, 이 풍성한 자아가 승화와 창조성 노력의 원천이 된다고 보았다. 우울적 자리의 복합적인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 자아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가장 높은 차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는 말

 

대통령의 편집-분열 자리, 대한민국의 우울적 자리

 

윤석열은 어디에 있는가? 편집-분열적 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우울적 자리로 왕복운동없이 그는 편집증적이고 기괴한 망상에 사로잡힌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사법고시를 9수를 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보면 그는 신림동 시절에도 고령이기도 하고, 술을 좋아하는 특성상 무리의 리더 자리를 고수를 해왔을 것이다. 또한, 그가 검찰 총장의 자리까지 올라갔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은 정치적인 아래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말이다.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가 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초자아는 법의 위반에 대하여 작동하지 않으며, 편집-분열적 자리의 초자아로서 작동한다. 오로지 멸절의 두려움으로 인한 파괴적 본능이 강화되는 형식으로 그는 세상을 이분화한다. 인간을 부분 대상으로만 관계하는 것이다. 종북과 부정선거라는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을 갈라치면서 그는 제왕으로 군림하고자 하였다. 그는 좋은 젖가슴은 김건희 하나이며, 나머지 나쁜 젖가슴은 자신을 박해한다는 망상 속에 빠져있다. 그 불안은 너무도 강력하여 정신증으로 나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한 망상을 방어하기 위해 주술적 힘폭력을 사용한다. 윤석열 개인은 이미 편집-분열적 자리에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라와 국민을 통합된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충동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하다. 이러한 윤석열의 편집-분열 자리를 대한민국은 우울적 자리로 통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라는 한 국가로 통합하려는 시민들은 다시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메웠다. 개개인은 편집-분열적 자리와 우울자리를 오가며 퇴행과 성장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민의 대다수는 우울적 자리에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함께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이 통합의 과정에서 좋은 것까지 훼손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수용해야 한다는 성숙한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인다. 우울적 자리는 파괴적 귀결에 대항하고 수선과 창조적 행위로 조화롭게 나아가는 대상들의 내적 드라마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올바름, 청년들의 정치적 관심, 시위의 창조적 진화 등여러 사안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편집-분열 자리로 나라 전체가 퇴행하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멜라니 클라인식으로 사랑을 정치에 도입하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양육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감과 같이 과거가 현재를 돕는경험들이 있지 않은가. 클라인은 우리 자신의 만족을 보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 위로 또는 행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주고 받기'의 본질적인 능력이 우리 안에 개발되어왔다.” 고 말하듯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생존 방식으로 사랑을 도입하고, 이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언론에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스테판 밋첼, 마가렛 블랙, 이재훈 역, 프로이트 이후(한국심리치료연구소,2000)

스티븐 엘만, 김승업 역, 정신분석 이론의 모델(하나의 학사, 2023)

홍준기,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새물결, 2017)

멜라니 클라인, 이민우 역, 아동정신분석(새물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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