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에게 습관이 되어 더 이상 불안하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불안이 무엇일까. 신체적 증상인가? 기분이나 감정인가? 아니면 생각의 막다른 골목인가?
불안에 대해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눈뜬 장님과 같다.
우리가 불안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의 이유를 타진해 볼 수 있고, 불안의 근거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면 사실 그것을 불안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불안은 기표의 환유만으로는 억압되지 않는다. 그러한 불안은 상상계적인 불안이다. 상상계적인 불안은 잉여향유의 매개체이다. 히스테리자의 장난감이다.
그러한 표피의 불안은 기표의 환유를 통해서 잠시 가라앉기도 하지만, 우리의 근원적 불안, 즉 알 수 없는 불안은 모든 것을 앞지른다. 아마 영혼을 앞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불안을 잘 다루면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표피의 불안을 잉여향유로 치환하는 히스테리증자와 불안을 부정하는 강박증자 모두 근원적 불안의 노예이다.
우리의 근원적 불안을 다루는 것이 정신분석의 과정이기도 한데, 알 수 없는 불안을 무의식이 근본환상으로 직조한 그 구조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이 끝나도 불안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욕망은 어쩌면 그 불안이 동력이다. 욕망이 사라지면 죽음이 오듯이, 불안이 사라지면 어떠한 욕망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불안 앞에서 나는 겸허해져야 겠다고 생각이 든다. 불안을 마치 새로운 기표의 발명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머리속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 불안의 목적은 공백이다. 공백에서 무언가 쏟아져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언어는 언제나 미끄러지지만 서도 우리의 실재는 새로운 언어화를 기다린다. 불안의 이유를 타자가 설명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자신이 쓴 각본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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