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담화

역전이 사용법

untold 2025. 4. 29. 00:42

 

    전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피분석자는 ‘이것이 전이인가? 지금은 전이의 중간인가? 끝물인가?’ 궁금하다. 정신분석에 대한 공부와 임상을 함께 하다 보면 분석가를 관찰하면서 사소한 행동과 말 속에서 역전이의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담자와 분석가의 전이, 역전이의 무의식의 핑퐁 속에서 ‘나의 반응의 유래가 나의 것인지 타자의 것인지’ 혼란의 도가니가 경우도 많다. 내담자는 ‘의미’를 파헤치기 위해 미친 듯이 무언가 조사 혹은 공부를 한다. 이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분석이 삶의 중심이 되고, 증상이 된다.

라캉세미나 17에서 전동기를 탄 여인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라캉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한 여인이 “라캉 선생님 맞죠? 세미나는 언제 시작하나요? 어디서 하나요?”라고 묻는다. 라캉은 “곧 알게 될 겁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사라진다. 인사말도 없이 이루어진 이 짧은 대화에서 라캉은 “과도함이 과도함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 여성의 다소 무례한 질문이 라캉의 과도한 태도를 촉발시킨 것이 아니라, 라캉 자신 안에 있는 과도함이 여인의 과도함을 만나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이와 역전이 관계 역시 초과와 초과가 만난 결과가 아닐까.

분석가는 자신의 역전이를 내담자의 무의식을 개방하는 ‘미끼’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 결국 분석가의 역전이는 회수되고, 분석가를 나를 닮은 타자, 동일시하는 상상계적 관계에서 벗어나 내담자는 자신의 무의식, 공백을 만나게 되는 것이 공식 아닌 공식인 것 같다.

 

케이스먼트의 분석 사례를 보면 고수의 향기가 느껴진다. 그는 한 내담자를 대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지루함’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이 환자에 대한 느낌과 씨름’한다. “개인적인 역전이 일까? 내담자는 다른 관계를 재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방어로 지루함으로 회피하는 것일까? 단순히 이 환자를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 케이스먼트는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이 환자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과 아버지가 어떻게 그녀를 대했는지 대한 이야기에서 놀랄만한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역할 반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경미한 성적 흥분”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 느끼는 욕구의 현실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없었고, 이는 그녀의 무의식적인 소통의 방식이 아닌지 생각한다. 또한 그녀가 상담 전후로 배설을 하는 것은 성적인 것을 모두 제거하려는 수단으로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실험적 동일시”를 사용하여 ‘키스 사고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을 빼먹은 것 같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이 것은 직접적이지 않고, 그녀의 입장에서 어떤 것을 누락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그녀 스스로 의미를 찾게 만들었다. 한편, 전이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라면, 외상은 재경험되면서 또 다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유기에 대한 외상이 있다면, 다시 버려져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반복 강박으로 분석가를 질리게 만들어 버려지는 경험을 유도하려고 할 수도 있다. 케이스먼트는 전이가 가진 유사성과 차이점이라는 두 가지 차원 속에서 내담자는 ‘안전하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여 한다고 말한다. 외상을 재경험하더라도, 분석가의 조력 아래 안전한 추락을 한다면, 내담자의 증상이 해소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안전한 추락은 내담자가 분석가의 이해와 민감한 반응 속에서 “안겨 있다”도 느끼는 안전한 분석적 관계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라캉의 관점과는 다른 지점) 그러나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환자여야 한다고 말한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환자는 유사성과 차별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이다. 새로운 균형점을 찾도록 분석가는 ‘사용’되어야 한다. 분석가는 과거와 과거에서 흘러들어온 현재의 결락을 발견하도록 조력한다. 현재를 현재로서 바라보는 관점이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도움 아래 내담자는 그 동안 누적된 외상을 다른 방식으로 덮어쓰기할 수 있다. 외상과 결탁한 기표를 흔들어 자신만의 의미를 구축한다면, 우리는 ‘이생망’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열리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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