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신분석의 쟁점으로서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의 역사
저자는 다음과 같은 라캉의 발언을 소개한다. 1979년 말년에 라캉은 “모든 것은 꿈이라고. 그리고 사람은 모두 미치광이라고”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단 한번의 언급을 자크알랭 밀레(1993) ‘모든 인간은 망상한다’라는 언술로 라캉의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맥락은 후기이론에서 네 번째 매듭을 거론하면서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묶는 것은 신경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일종의 인류문명의 증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보편적 망상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외계인이 인간 문명을 바라본다면 시니피앙의 효과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우리를 어쩌면 미치광이로 볼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가지고 있던 이 단편적 지식은 정신증과 신경증자에 대한 선입견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올릴 수는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정신증자들, 특히 정신증과 신경증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사람들을 정신병의 범주에 넣고 싶어 안달하기도 하였다. 그들을 이해하기 보다 범주화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론과 삶의 괴리를 이 책이 좀더 좁혀주는데 유용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지난 방학 동안 간간히 읽어 나갔다. 저자의 정리된 요약 설명 사이로 수없이 길을 이탈하며, 간신히 발제를 쓴다. (오늘도 징징거림 없이는 시작이 안되는 고질적인)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저자인 마츠모토 타쿠야(1983~)은 일본의 정신과 의사로 정신의학자로, 2015년에 출간된 본 처녀작 이후에도 활발히 라캉정신분석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업 첫 주에 다루었던 ‘창조와 광기의 역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정신분석에 관련한 저작들은 일본이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많이 발간되고 있는 듯 하다. 이 젊은 저자는 서문에서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이 정신분석 역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요쟁점이고, 라캉의 이론과 실천이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 진단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전 생애를 통해 ‘감별진단’이라는 과제를 다뤘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저자는 중간중간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논지를 점검한다. 그런데 왜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 되는가? 저자는 임상적 요청 뿐만 아니라 질병론적 측면과 정신보건 정책상의 요청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증과 정신증의 치료방법은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캉은 인간의 마음의 구조를 신경증, 정신증, 도착증으로 구분한다. 이 책에서는 도착증은 논외로 하고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이라는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라캉정신분석에서는 신경증과 정신증의 어디쯤이라는 구조는 인정하지 않는다. 신경증자는 정신증자가 될 수 없고, 정신증자는 신경증자가 될 수 없는 배중율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라캉이 말하는 신경증과 정신증은 그라데이션 되었는가? 서문에 따르면 자끄 알랭 밀레는 발병하지 않는 '보통의 정신증'이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개념 역시 신경증과 정신증의 사이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닌, ‘정신증이 발병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전반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이 책은 신경증과 정신병에 감별을 둘러싼 논의들을 담고 있다. 먼저 1부 ‘라캉의 이론적 변천사’, 2부 ‘신경증과 정신증 감별진단에 대한 이론적 변천’을 1부보다 더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3부에서는 ‘감별 진단 이후의 사상’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가 발제해야 되는 부분은 1부와 2부 1장이다. 필자는 목차의 순서를 조정하여 2부의 1장 프로이트의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의 역사를 먼저 다루고, 1부에서 라캉의 정신증과 신경증에 관한 이론적 변천을 뒤에 배치하였다. 저자는 30년대,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 시대별로 라캉이 주목한 개념들을 소개하고,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 기준의 근거가 되는 이론들을 간략하게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모든 라캉의 이론이 그렇듯이, 마츠모토 타쿠야가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개념적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나름 정리해왔던 자료들을 활용하며 요약에 가까운 본 글을 작성하였으나, 각주와 참고문헌이 꼼꼼하지 못한 점 미리 양해말씀을 구한다.
또한 마츠모토 타쿠야의 용어와 한국에서 정신분석에서 쓰인 용어에 다소 차이가 있어 한국에서 주로쓰는 용어를 병기하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쓰인 역어 천이는 한국에서 전치로 쓰이고 있어 익숙한 ‘전치’로 사용하였다.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배제’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는 거의 ‘폐제’로 쓰고 있으며, ‘팡타즘’은 환상, ‘현실계’는 실재계로 썼다. 또한 정신병과 정신증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정신병보다는 정신증으로 주로 쓰이는 듯하다. 신경증과 같이 정신증도 병리라는 관점보다 구조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본 글에서도 정신병 보다는 정신증으로 쓰고자 한다.
서문에서는 라캉의 이론의 비판자들에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데, 들뢰즈, 가타리, 데리다 등이다. 저자가 보기에는 그들의 비판의 주요 쟁점이 ‘신경증과 정신병에 대한 감별 진단’이다. 이들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 19070년대의 라캉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와 같은 저자의 주장에 아직은 판단할 주제가 되지 못하는 데다가, 3부 ‘감별 진단 이후의 사상’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므로 본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먼저 프로이트는 신경증과 정신병을 어떻게 감별했는지 살펴보자.
프로이트의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진단(1894~1938)
신경증이라는 용어는 18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의사 윌리엄 컬렌에 의해 처음 도입되었다. 신경증 neurosis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neuro에서 나온 말로 신경 또는 힘줄이란 뜻이 있으며, osis는 상태, 질환, 병적 과정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19세기 신경증은 설명이 불가능한 다양한 신경계의 질환을 지칭하였다. 당시 프로이트는 ‘모든 계열의 질환 속에 있는 심인성 기제’를 밝히는데 주력하였고, 정신병과 대립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저자는 프로이트는 크게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론을 네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 정신증과 신경증은 방어의 메커니즘이다. 둘째는 방어의 메커니즘 속에는 표상의 심적 가공 여부가 포함된다. 셋째는 이에 대한 체계화의 시도를 꾀했다. 넷째, 나르시시즘의 관점으로 신경증과 정신증을 나누었다.
1. 방어의 메커니즘
먼저 프로이트는 1894년 <방어-신경정신증>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은 ‘방어’ 메커니즘의 차이로 구분한다. 1896년에는 ‘방어’ 대신에 ‘억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프로이트는 자아와 양립할 수 없는 표상이 고통스러운 정동을 불러일으킬 때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이 방어라고 보았다. 신경증에서 방어로서 전환과 전치가 일어나고, 정신증에서는 이 표상을 배제(폐제)해 버린다.
신경증에서의 방어 ; 전환과 전치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증상에는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증상의 기원이 되는 갈등이 상징적인 작업을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일상생활 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히스테리의 경우는 방어로서 ‘전환’이 있다. 히스테리 연구에 등장하는 체칠리에 M부인의 사례를 들면, 그녀는 회식자리에 당당하게 등장하지 "rechte Auftreten" [레히테 아우프트레텐]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상징적인 매개를 거쳐 오른쪽recht[레히트] 다리가 디뎌지는Auftreten[아우프트레텐] 않는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났다. 독일어의 Aufreten[아우프트레텐]이라는 단어는 명사는 등장/처신이라는 의미이고, 동사로는 발을 딛다라는 의미가 있다. ‘당당하게 등장하다’라는 관용어구가 그대로 무의식에 취해진 결과 오른쪽recht 다리가 디뎌지는Auftreten 않는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신체로 전환된 사례이며, 라캉의 무의식은 언어와 같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언명의 토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로 안나.O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증상이 있었는데, 프로이트의 분석결과 그녀가 싫어하던 부인이 안나의 개에게 유리잔에 든 물을 마시게한 장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것은 안나에게 양립할 수 없는 표상으로 경험되어 물을 마시지 못하는 신체적 증상으로 전환되었다. 강박증 환자들 중에는 손을 끊임없는 씻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표상에서 정동을 분리하여, ‘손을 씻어야 한다’는 별거 아닌 행위를 반복하는 전치로 나타난다.
정신병에서의 방어 ; 배제(폐제)
반면 정신병에서는 자아가 양립할 수 없는 표상이 그 정서와 함께 폐제되는 것이 정신병의 방어의 방식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자아는 마치 그러한 표상이 들어온 적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사례를 살펴보자. 한 남성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이 서로 호감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남성이 무관심한 것을 알게되어 실망한 나머지 ‘남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다’는 표상을 폐제해 버린다. 그 결과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와 행복한 생활을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환각은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호감이 없다는 사실과 연관이 되어 있긴 하지만 신경증의 경우는 전환과 전치라는 우회를 거쳐 표상이 심적 생활에 존재하지만, 정신병은 완전히 그녀에게 호감이 없다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 페제되고, 폐제된 표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표상군이 환각으로 드러난다.
2. 표상의 심적 가공 유무에 따른 감별 진단 (1894~1905)
이 시기에는 프로이트는 무의식에서 표상의 가공을 주목했다. <히스테리 연구>에서 걷지 못하는 증상을 가진 환자가 있었다. 프로이트가 밝혀낸 것은 ‘혼자 있는 것에 고통을 느끼던 환자가 그 고통을 신체로 전환한 것’이다. Alleinstehen(알라인슈테인;홀로 서있다)이라는 표상을 심리적으로 가공한 결과 ‘혼자 allein서있는stehen’이라는 표상으로 가공하여 서있거나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일종의 말장난 같은 표상의 가공과정을 환자는 알지 못하며, 이를 의식화, 해석하는 것은 정신분석의 기법이라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또한 꿈이나 신경증에서는 자신에 성적으로 중요했던 인물이 가공된 형태로만 등장하는 반면, 정신병(파라노이아)에서는 그러한 인물이 가공 없이 그대로 나타난다. 인물의 가공이 없다는 의미는 신경증에서는 꿈에 등장하는 인물은 원래 인물이 아닌 다른 인물로 가공되어 나타난다. 정신병에서는 인물의 가공이 없이 망상 속에 그대로 있다.
그의 사례에 따르면 한 여성이 세입자로 있던 남성 노동자가 자신을 성적으로 유혹하다가 바로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는 그 남자를 기다리는 미련한 여자로 동정한다. 여자는 동네 여자들이 그녀에 대해 이 남자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피해망상 생겼다. 분석결과 그에게 여자는 성적 흥분을 느꼈고, 이 때 자신을 ‘나쁜 여자’라는 자기 비난 형성했다. 그러나 이 비난은 자아에 양립할 수 없으므로, 이 표상은 폐제되고 투사되어 ‘나쁜여자’라는 비난이 외부로 들어온다. 비난의 내용은 가공을 거치지 않고 망상 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정신병은 무의식을 은폐하지 않고, 의식으로 밀려 들어온다. 라캉은 정신증자를 이러한 의미에서 ‘무의식의 순교자’, ‘명백한 증언자’라고 표현하고, 신경증자의 증언은 해독을 해야 하는 ‘가려진 증언자’라고 말했다.
3. 메타 심리학 시기의 감별진단 (1915)
프로이트는 이 시기에 신경증과 정신병의 방어 메커니즘의 차이가 증상에 차이를 낫는다고 보았다. 이를 체계화하려고 시도했다. 증상은 공포증, 강박신경증, 전환히스테리로 각각의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먼저 공포증은 유명한 사례로 리틀 한스가 있다. 한스의 말공포증은 아버지를 향한 욕동이 억압되어 그 결과 아버지에 해당하는 동물의 표상이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강박신경증의 경우는 정동을 억압하는 대신 중요하지 않은 표상을 지속적으로 의식에 올려 놓음으로써 병적인 표상을 억압한 채로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세척 강박은 손 씻기라는 무의미한 표상을 끊임없이 의식함으로써 병인적 표상을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전환히스테리 증상은 욕동을 억압하면 욕동을 대표하는 표상을 대체할 수 있는 신체부위에 리비도를 공급한다. 정동은 완벽히 억압하기에 이를 ‘히스테리 환자의 놀라운 무관심’이라고 일컫어진다. 이처럼 각종 신경증의 증상은 전이나 응축과 같은 대체물형성의 매커니즘 작동하고 거기에 정동이 얽혀서 형성된다.
반면에 정신병은 무의식적 표상이 억압없이 그대로 의식에 표출된다. 재밌다고 생각한 사례인데, “양말을 신을 수 없는” 환자의 증상의 원인은 신경증과 정신증에서 다음과 같이 다르게 나타난다.
- 강박신경증의 경우 많은 저항을 극복 후 양말을 신거나 벗는 행위는 수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양말을 신을 수 없다. 발은 성기를 상징하는 매개가 되어 은유에 따른 의미작용이 내포된다.
- 스키조프레니의 경우는 양말에 그물망 구멍이 있다는 것 때문에 양말을 신을 수 없다. 양말의 구멍 하나하나가 여성의 (성기)구멍을 상징하기 때문에 구멍이라는 단어의 동일시만으로도 그물망이 여성의 생식기와 동일시 되는 것이다. 양말의 구멍은 ‘여성의 성기 구멍’을 상징한 것은 아닌가? 이 부분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스키조프레니는 양말그물망의 구멍은 여성생식기 구멍과 같다는 사실 때문에 양말을 신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양말의 그물망 구멍이 여성생식기를 상징한다고 해서 수음이라는 의미를 생성하지 않는 것이 신경증자와의 차이인 듯하다.
4. 나르시시즘에 의한 감별 진단 (1911-1915)
프로이트는 신경증과 정신증이 나르시시즘에 의해서도 감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애가 자체성애, 나르시시즘, 대상애 순서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정신병 초기에서는 나르시시즘으로의 퇴행은 외부세계로부터 리비도를 철수하게 된다. 이는 세계몰락(금방이라도 세상의 종말이 올 것 같은 불안한 체험. 일시적으로 급조된 인간들로 전락하는 것 같은 체험), 과대망상(자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짐)으로 체험된다.
프로이트는 공포증, 전환히스테리, 강박증 등 신경증을 전이성 신경증[신경증]으로 파라노이아, 스키조프레니, 우울증은 나르시시적 신경증[정신병]으로 나누었다. 전이는 외부세계를 인정하고, 대상애가 가능한 상태이나 나르시시즘은 리비도가 오로자 자아에 수몰되어 분석가가 아무리 애를 써도 환자의 관심을 끌 수가 없어 전이가 불가능하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특징도 감별 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이의 시니피앙
프로이트는 분석주체가 분석가에 대해 대상애를 느끼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라캉은 전이를 ‘시니피앙의 문제’로 보았다. 즉, 분석가와의 관계 속에서 ‘전이의 시니피앙’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AE248)
환자는 자신의 증상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분석가를 찾아온다. 환자에게 그 증상은 하나의 기호였지만, 분석가와 예비 면담이 시작이 되면 그 기호는 시니피앙이 된다. 즉, “시니피앙이 다른 시니피앙에 대해 주체를 대리 표상하는 것인 반면, 기호는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를 대리 표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지식을 위임받은 어떤 시니피앙이 분석주체를 대리 표상하고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이 때 나타나는 시니피앙이 ‘전이의 시니피앙’이 되며, 비로서 분석가는 “안다고 가정된 주체”가 되어 전이가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 ‘전이의 시니피앙’이 무엇인지 다소 모호하게 생각되었다. 저자는 이 ‘전이의 시니피앙’을 다른 시니피앙이 대체하는 은유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팔루스적 의미작용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무의식의 지식을 위임 받은 어떤 시니피앙이란 분석주체가 분석가에 털어놓은 증상적 기표일까? 분석가를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 인정하는 무의식적 기표를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르시시즘에서의 정신증
앞서 논의된 나르시시즘으로의 퇴행에서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리비도의 외부세계로의 재-국소화’의 정신병 과정으로 설명한다. 정신증자의 리비도는 나르시시즘으로 고착되어 있으며, 외부세계를 잃어버린 상태이다. 잃어버린 외부 세계를 되찾으려는 시도로 파라노이아는 궁극적으로 세계 몰락체험 후 자신을 성애적 대상으로 선택하는 무의식적 동성애로 향한다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억압된 동성애 욕망을 외부세계에 투사함으로써 붕괴된 외부세계를 재구축한다.
스키조프레니아의 경우는 대상애를 완전히 폐기하고 유아기적 성애단계로까지 돌아간다. 동성애적 욕망은 작동하지 않으며, 외부세계의 투사 망상도 없으며, 그러나 세계 몰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외부 세계를 회복하려는 시도을 한다. 그들이 회복하려는 방식은 과거의 대상을 직접적으로 되찾으려는 환각성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라노이아와 차이가 있다. 그들의 외부세계는 현실과 거의 일치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치매상태에 이르게 된다.
멜랑콜리 환자는 병에 걸리기 전에 특정 인물을 대상 선택해 그 인물에게 리비도를 공급하였으나, 대상이 상실하거나 실망했을 때 대상과의 리비도적 관계가 흔들리면서 리비도의 공급이 철회되고 해방된 리비도는 자아로 돌아간다. 구순적 리비도 단계로의 퇴행이 일어나기 때문에 리비도는 대상을 재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를 대상과 동일시 하기 위해 유지된다. 상실한 대상에 자아를 동일시하면서 빈곤해진다.
동성애인가. 아버지 콤플렉스인가?
프로이트는 파라노이아를 무의식적인 동성애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며, 파라노이아의 나르시시즘에 대한 집착은 자신과 같은 성별의 인물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파라노이아와 동성애를 즉각적으로 연결하지 않고, 슈레버의 아버지 콤플렉스, 부성의 문제를 검토하였다. 슈레버의 현실에서의 결핍은 자식을 낳지 못했으며, 아버지와 형을 잃은 그를 위로해줄 아들,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동성애적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아들을 얻지 못했다. 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발병 상황을 그의 가문이 끊어지는 위기와 연관시켰다. 아내의 유산. 민사부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의 승진. 슈레버가 직업적 의미의 아버지적 인물이 되려고 할 때 병이 재발했고, 프로이트는 부성의 위기와 발병을 연결시켰다. 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발병에 일차적인 역할은 아버지 콤플렉스, 동성애는 이차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프로이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노이아의 특이성을 밝히기 위해 동성애적 욕망 공상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며, 아버지 콤플렉스 탐구 포기했다. 그 결과 동성애 환상이 핵심이 되고, 일반적 이론을 구축되었다. 성애의 남녀대칭도 1920년에는 포기되었고, 여아는 역오이디푸스 상황에서 어머니와 동일시가 아니라 어머니는 라이벌 대상이고, 아버지를 성애의 대상이 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겪는다고 인정했으나 1920년 논문에 여성 동성애 한 사례의 심상적 원인에 대하여 여아의 경우에서 처음 성애적 관계를 맺는 것은 어머니와의 관계임을 인정하였다. 1931년 여성에 대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에게만 해당하고, 성애발달에 있어 남녀 대칭을 포기한다. 라캉이 <세미나 정신병>에서 취한 독해전략은 남녀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비대칭선상에 위치하며, 즉 정신병의 핵심적 문제는 자신과 같은 성별이라는 의미의 상대적 타자가 아니라 절태적 타자로서의 아버지라고 보았다. 슈레버의 여성화는 정신병의 구조적 조건인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 과정의 일부로 재조명 한 것이고, 이 논의는 아버지 콤플렉스가 전이를 통해 슈레버의 동성애적 욕망 공상이 형성되었다는 프로이트의 첫 번째 통찰을 본래의 형태로 다시 다룬 것으로 설명된다.
현실 상실과 공상 세계에서 본 감별 진단
프로이트는 1924년 발표에서 신경증과 정신증은 외부사회(현실)과 맺는 관계의 차이로 보았다.
신경증은 자아와 Es(초자아)와의 갈등의 결과로 자아가 초자아를 침묵시키려 하는데서 생기고, 정신병은 초자아에 자아가 패배하여 자아가 외부세계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보았다. 요약하자면 정신증은 현실로 부터 이탈하여 공상세계를 만들어 현실을 대체하지만, 신경증은 격리된 공상세계로 도피하지만 현실을 대체하진 못한다.
대략 1960년 대까지 라캉은 프로이트가 현실 상실, 공상계라는 관점에서 감별진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신경증, 정신병 모두 현실 상실이 똑같이 존재하고 양자는 모두 공상세계(환상)에 의해 심리상태를 안정화 시킨다고 보았다. 신경증자의 현실은 환상의 스크린에 차단됨으로써만 가능하고, 신경증의 주체는 환상이라는 틀(대상a의 추출)안에서 자신을 욕망의 수준을 지탱할 수 있다. 반대로 정신증은 현실의 영역이 작동하지 않으며, 대상a가 추출되지 않고 환상과 유사한 망상을 만든다고 보았다.
6. 말년의 프로이트에서 감별진단의 쇠태( 1925-1938)
저자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감별진단론은 1894년 ‘폐제’를 정신병의 표지로 삼는 것을 시작하여 표상의 심적 가공유무의 감별진단론을 만들었고, 1910년대에는 정신병을 나르시시즘의 퇴행과 외부세계의 붕괴로 이해했다. 1924년 정신병의 현실 상실의 ‘부인’에서 말기 프로이트 논의는 이 감별론을 해체 버렸다. 1938년 정신분석개론에서 부인은 자아분열이고, 자아분열은 신경증과 정신증 모두 있다고 의견 바뀐 것이다. 라캉의 이론처럼 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진단론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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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신경증과 정신증의 감별진단을 둘러싼 프로이트와 라캉의 관계
1) 신경증 환자는 양립할 수 없는 표상을 받아들인 후 그 표상을 가공하지만, 정신병자는 양립할 수 없는 표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한다. 이논점은 라캉에 의해 억압과 배제의 차이로 계승되었다.
2) 신경증에서 무의식은 독해를 필요로 하지만, 정신병에서는 무의식이 의식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 가탕은 이를 정신병이 무의식이 백일하에 노출된다고 표현함
3) 신경증의 증상은 은유에 의해 구성되지만, 정신병의 증상은 은유가 결여된 냉소적 명제로 구성된다. 라캉은 부성은유에 의한 새로운 의미작용의 출현을 신경증의 지표로 생각했다.
4) 신경증에서는 리비도가 외부세계에 공급되기 때문에 전이가 성립될 수 있지만, 정신병에서는 나르시시즘으로의 퇴행이 일어나기 때문에 전이가 성립하지 않는다.
라캉은 전이를 분석가에 대한 대상애의 발산이 아니라 전이의 시니피앙의 출현으로 보고 이를 신경증의 지표로 삼았다. 또한 라캉과 라캉학파는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병의 나르시즘의 퇴행을 각색하여 향락의 탈국소화라고 불렀다.
5)정신병의 중핵으로 작용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아버지 콤플렉스다. 라캉은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기능부전,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로 계승했다.
6) 신경증과 정신병 모두 현실 상실이 있지만, 신경증에서는 공상 세계 속에서 대상과의 관계가 유지된다. 정신병에서는 공상 세계(망상)를 만들어 현실 상실을 극복한다. 라캉은 신경증에서 팡타즘이 작동하지만, 정신병에서는 팡타즘이 작동하지 않으며, 정신병자는 망상형성을 통해 팡타즘의 대리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7)최종적으로 프로이트느 부인과 자아분열을 모든 정신구조에서 볼 숭 lT는 메커니즘으로 일반화한다. 마찬가지로 70년대 라캉도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 진단론을 해체하고 양자를 동일한 틀로 파악하게 된다.
라캉의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에 대한 이론적 변천
책의 1부로 다시 돌아가서 라캉의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에 대한 이론적 변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라캉의 이론적 변천은 프로이트의 텍스트에 속에 흩어져 있었던 감별진단론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하고 이후 이를 상대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1장 30년대의 라캉 – 망상의 무매개성과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
라캉은 1932년 논문 <인격과의 관계에서 본 파라노이아성 정신병>에서 프로이트가 논한 신경증과 정신병의 망상의 차이에 주목한다. 정신병의 망상은 신경증과 달리 상징작업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생생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신병의 망상은 무매개적으로 출현하기 때문에 어떤 해석도 필요없다. 예를 들어 신경증에게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그들의 말을 듣고 해석해야 하는 반면, 정신증자에게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그 자체가 무매개적으로 언명된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성교로 유혹한다’는 언명의 망상이 떠오른다. 당시 초현실주의자인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을 받은 라캉은 파라노이적 기법이 정신병의 망상과 매우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쉬르레알리즘 즉 초현실주의는 정신병의 망상과 동일한 의미작용의 부재를 형성한다. 1930년대 라캉은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진단을 명확하게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매개성-무매개성의 대립으로 나누었다.
제2장 50년대 라캉 - 정신병의 구조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1950년대에 라캉은 정신분석에 레비스트로스의 ‘구조’개념, 페르디낭 소쉬르로부터 ‘시니피앙’개념을, 로만 야콥슨에게서 ‘은유와 환유’개념을 도입한다. 당시 라캉은 구조주의의 여러 개념을 사용하면서 감별 진단론을 세웠다. 자크 알랭 밀레에 따르면 라캉의 ‘구조’ 개념은 ‘정신에 연속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신이 연속체라면 정신병, 신경증, 도착증은 경계가 모호하고 섞였다는 진단이 가능할 텐데, 라캉은 신경증, 정신병, 도착이라는 세 가지 구조에서 인간은 어느 하나를 갖게 되고, 이행이나 중간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구조는 억압, 폐제, 부인이라는 서로 구별되는 세 가지 부정의 메커니즘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신경증과 정신병의 구조는 어떻게 나눌까?
라캉은 어떤 증상이라도 단독으로 신경증이나 정신병의 구조로 판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성애, 망상, 환각의 현상은 신경증이나 정신병에 모두 나타나므로 이것을 구별의 지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 이름의 폐제’가 그 기준점이 된다고 보았다. ‘아버지의 이름’이란 저자에 따르면 상징계를 제어하는 시니피앙이다. 70-80년대의 라캉파가 진행한 정신병 연구는 어떻게 ‘아버지 이름의 폐제’를 파악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집중된다. 이는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의 증거가 되는 요소 현상의 유무와 팔루스적 의미작용의 성립 여부로 감별하고자 했다.
요소현상
요소현상은 망상의 기본적 단위로서, 요소현상과 망상은 부분과 전체가 일치하는 프랙탈적 관계로 성립된다.
예를 들어, ‘성교를 받아들이는 여자가 되는 것은 멋진일 일거야’라는 돌발적 침입사고가 ‘스스로를 여성화하여 주치의인 플렉지히 교수에서 성적으로 남용되고, 신의 여자가 되어 세계를 구원한다는 그의 최종적인 피해(과대)망상을 이미 배태하고 있다. 이를 아버지 이름의 폐제의 증거로 라캉은 보았다.
일반적으로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과 연쇄되는 형태를 취하며 상징계에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 현상은 기표연쇄가 되지 않고, 중단된 연쇄(E535), 현실계의 시니피앙(E583)으로서 단독으로 나타난다.
임상에서는 확신과, 병적인 자기 관계짓기라는 두 가지 체험을 들 수 있다.
정신병에서는 상징계의 수준에 있어야 할 시니피앙이 현실계의 수준에서 나타난다. 환청을 호소하는 정신병자에 대하여, 음성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에게 음성이 들리지 않는 다는 가능성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부재의 확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통장에 돈을 보여줘도 그들은 믿지 못하는데, 애초에 돈이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상실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요소현상은 병적인 자기 관계 짓기가 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자기와 관련있다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가 호의를 품은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경증자는 아니, 내 착각이겠지 하면서 변증법적 대화 모드를 취한다. 그러나 정신병자들은 외부의 우연한 사건이 자기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믿는다.
팔루스적 의미작용의 성립유무에 따른 구별
라캉은 프로이트의 꿈작업 압축과 전치이라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은유와 환유로 읽는다. 은유는 새로운 의미작용을 만들지만, 환유는 의미를 산출하지 않는다. 신경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은유로서 도입되며, 이를 부성은유라고 말한다. 신경증에서 부성은유에 의해 산출되는 의미작용을 팔루스적 의미작용이라고 부른다.
꿈, 농담, 실착 행위는 은유에 의해 생성되는 의미작용을 감추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이 폐제된 정신병에서는 팔루스적 의미작용이 생성되지 않으며, 그들에게 세계의 총체적인 모습은 하나의 커다란 무의미, 즉, 수수께끼로서 나타난다.
(사례)
어떤 사람이 순경hirondelle(문자적으로 제비를 의미하지만 속어로는 경찰을 의미한다)에게 얻어맞고 며칠이 지나자, 새에게 공격받는 피해망상을 보였다. 이 증례는 상징적인 질서에서 배제된 것, 순경hirondelle이라는 시니피앙이 그 자체로 현실계에 나타난다.
장-클로드 말레발은 1978년 논문에서는 “아버지 이름의 배제가 보이지 않는 신경증”에 대해서 논의한다. 마리아 사례를 보면 그녀는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가 보이지 않으며 신경증적인 은유에 의한 의미작용이 담겨있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망상은 무엇인가 의미하고 있다. 혼혈아 이었던 마리아가 자신의 피부색(오염)을 정화하고, 양친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며, 미확인 비행물체는 마리아에게 팔루스 이미지가 투영된 대상이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이론은 남성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 진 것에 대한 그녀의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레발은 이러한 사례를 신경증이나 기질성 질환에서 나타나는 망상 비슷한 것을 ’가성망상‘이라고 명명했다.
반대로 가성망상에서는 환자의 환상이나 과거의 걱정거리와 연속되어 있으며, 상징계의 구멍 주위를 두르고 있던 불가능한 대상이 불안을 초래하는 팔루스적인 것으로 육화되어, 주체를 매혹하는 상상적인 산물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억압된 것의 회귀를 중심으로 환상적 투사가 이루어진 것이며, 말하자면 낮에 꾸는 악몽과 같은 것이다. 말레발은 그동안 통합실조증이라고 진단된 과거의 다양한 증례들이 히스테리였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말레발의 주장은 아버지의 이름이 폐제되지 않은 가성망상은 히스테리이며, 정신증은 아니란 얘기인가?
3장 60년대 라캉 분리의 실패로서의 정신병
50년대 라캉은 정신병을 시니피앙, 의미작용과 같은 구조론적 개념을 파악했지만,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상a와 팡타즘, 향락으로 옮겨가면서 정신병에 관해서도 시니피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측면을 다루게 된다. 정신병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니피앙의 주체와 향락의 주체라는 양극단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80년대 초 밀레는 60년대 라캉의 임상적 정립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60년대 라캉의 정신병론에서 더 이상 아버지의 이름의 폐제는 정신병의 유일한 중심 메커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논문 <무의식의 위치>에서 인간의 심적 메커니즘의 구조화를 소외와 분리라는 두 가지 계기로 파악하고 그 부성은유를 분리의 원리로 자리매김 한것에서 유래한다. 분리의 실패, 팡타즘의 부재, 대상 a의 비추출로 정신병을 조명하게 되었다.
소외와 분리
소외란 대타자(시니피앙)의 도입으로 인간의 원초적 향락(주이상스)를 상실하고 이 상실 속에서 주체(빗금친 주체)가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그 결과 인간은 원초적 쾌락에서 멀어져 쾌락원리에 종속된다. 그러면 원래 있었다고 가정되는 주이상스는 쾌락원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과도한 쾌락, 치명적 쾌락이 된다. 그러나 소외에서 도입된 타자는 일관된 대타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결핍을 안고 있는 대타자(Ⱥ)이다. 대타자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주이상스를 부분적으로 대리하는 대상a를 추출하여 대타자에게 내놓는다. 이 과정을 분리라고 한다. 저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분리를 통해 사람은 대타자에 내재하는 결함을 인정하면서 그 결함을 대상a로 가려서 보이지 않게 하는 이중의 태도를 양립시키는 자아분열에 도달한다. 이렇게 대상a를 매개로 하여 향락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잇는 환상의 공식 $ ◊ a 이 형성되는 것이다. 반대로 정신병에서는 분리가 성공하지 못하고 대상a가 추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정신병에서는 향락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벽기능 ◊(뿌앙송)인 환상이 작동하지 않아 치명적인 향락에 무매개적으로 노출된다.
따라서 정신병에서는 우선 향락의 탈국소화delocalisation가 발생된다. 이는 향락의 재배치. 대상a의 출몰을 의미한다. 신경증자는 향락을 대상a를 통해 국소화하지만. 정신증자는 탈국소화 결과 대상a가 넘쳐난다.이런 의미에서 슈레버의 망상은 향락을 다시 묶어내려는 회복의 시도이다.
슈레버는 신, 플렉지히 교수에서 향락을 국소화 시키려고 한다. 라캉은 이러한 상황을 ’파라노이아는 향락을 대타자 그 자체의 장에서 찾는다‘라고 말한다. 탈국소화된 향락의 시니피앙화의 시도는 목적은 회복의 시도이다.
4장 70년대의 라캉. 감별 진단론의 상대화
50년대는 시니피앙의 영역에서 신경증과 정신병의 감별 했다면, 60년대 향락과 대상a를 논하고, 70년대 두 영역을 나누어 논하는 것을 멈추고 묶어서 논하였다. 70년대 라캉은 먼저 소외와 분리를 하나의 정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 (디스쿠르)담화이론을 구축하였다. 신경증은 담화 내부이고, 정신증은 담화 외부에 있다. 성별화 정식 구축하면서 신경증은 팔루스의 함수를 따르는 존재로, 정신병자는 팔루스 함수를 따르지 않는 예외의 위치를 육화시키는 존재로 보았다. 70년대 후반부터는 더 이상 신경증과 정신증을 감별을 명시적 논하지 않았다.
70년대 후반 라캉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위상학의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72년에 제시한 보로메오 매듭은 그 중 2개가 서로 교차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고, 73년 현실계(실재계), 상징계, 상상계로 불려온 영역이 보로메오 매듭의 세 개의 고리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어지는 R. S. I 와 셍톰의 세미나는 R.S.I라는 세 개의 고리가 분리되지 않도록 묶어주는 네 번째 고리와 증상의 관계를 다룬다.
90년대 라캉주의자들에게 셍톰은 핵심관심사가 되었고, 셍톰의 세미나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문학의 창조를 통해 정신병이 발현되지 않고 생애를 마칠 수 있었다는 라캉의 주장에 따라 발병하지 않는 정신병의 구조에 주목했다. 밀레는 ‘보통의 정신병’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신병원에 장기 입원하는 것과 같은 보통 정신병은 오히려 정신병이라는 사태가 평범하게 살고 있는 듯한 증례를 가리키며, 발현되어 기괴한 망상 체계를 만들어 내는 비범한 정신병과 대비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공공기관 무료 정신분석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관찰한 결과 상당수가 보통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시대의 큰 변화를 반영하고 신경증과 정신병의 단절에 대한 논의점 시사하는 보통의 정신병 대한 자세한 논의 3부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 라캉학파의 신경증과 정신병의 관계 재조명
늑대인간의 증례의 재검토
프로이트는 늑대인간을 강박신경증으로 보았으나, 라캉은 아버지의 이름 폐제라는 개념을 끌어냈다. 밀레는 ‘늑대인간은 아버지의 이름의 은유가 완전히 작동하지 않았음에도, 팔루스적 의미를 통해 삶을 유지한 사례’로 보면 보통의 정신증의 토대가 되는 이론으로 삼는다.
2. 배제의 일반화
밀레는 87.5.23. 강의에서 ‘일반화 배제’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신경증이나 정신병이라는 것의 구조가 무엇이든 간에 상징체계를 지탱하는 시니피앙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타자의 대타자는 없다’는 라캉의 언명에 유래한다. 따라서 신경증이든 정신병이든 폐제라고 부를 수 있는 상징체계의 구멍이 있는 것이다. 이 결여를 ‘일반화 배제’라고 밀레는 부른다. 이 구조적 폐제로 인해 뚫린 구멍을 보충하기 위해 개입하는 ‘아버지의 이름’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될 수 없고, 이제 ‘아버지의 이름들’이 될 수 밖에 없다. 라캉이 아버지의 이름들이라고 표기한 것은 아버지의 이름이 더 이상 단일한 것이 될 수 없고, 그 기능을 담당하는 다양한 아버지의 이름의 존재 방식이 요청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3. 망상의 보편화
정신병의 구조적 조건인 폐제가 일반화되면 정신병의 구조 자체도 일반화 되는 것일까. 라캉은 1979 말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것은 꿈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모두 망상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라캉의 이 발언을 계기로 밀레는 ‘모든 인간은 망상한다’를 키워드로 라캉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스크랴빈(2006)은 아버지의 이름의 폐제는 구조적인 것이며, 모든 주체에게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신경증의 구조를 규정한다고 여겨졌던 부성 은유는 더 이상 정신병자가 만들어 내는 망상적 은유와 다를 바 없다. 부성은유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공유된다는 점 외에는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신경증도 정신병도 각자의 방식을 폐제를 보충할 뿐이다.
4. 신경증과 정신병의 새로운 자리 매김
신경증과 정신병은 연속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스크라빈은 말한다.
매듭의 위상학에 의해 신경증과 정신병은 적어도 보완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가까워진지지만, 신경증과 정신병을 나누는 근본적인 점은 유지된다고 보았다. 말레발(2011) 역시 폐제가 일반화되더라도 정신병에 한정된 아버지의 이름 배제라는 메커니즘은 일반화 배제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즉 폐제에는 모든 주체에 공통된 일반화 폐제와, 정신병에 특유한 제한적 폐제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 폐제에 보통 망상과 정신병적 망상이 각각 대응하고 있다. 밀레가 사람은 누구나 망상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화 폐제나 보통 망상이라는 생각에서 발전한 것으로 정신병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레발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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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해는 라캉의 위상학과도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 75년 파라노이아에 대한 라캉의 새로운 정의를 보면 파라노이아는 R. S. I를 하나의 일관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S23. 53) R. S. I는 각각의 고리로 독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직접적으로 얽혀있다. 이 매듭에는 보로메오 구조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말레발은 (2000)은 이 보로메오 구조의 부재를 위상학의 관점에서 ‘아버지의 이름’의 배제, 즉 정신병의 기준이라고 본다.
밀레 역시 신경증과 정신병 사이에는 역시 연속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정신병이라는 큰 장의 내부에서 단계적 변화일 뿐이다. 신경증과 정신병은 둘 다 누빔점이 있는데, 신경증의 누빔점은 아버지의 이름이고, 정신병의 누빔점은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것이다. 신경증을 정신병의 서브세트(부분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를 개괄하면, skip
1) 라캉은 그 이론적 변천을 통해 끊임없이 감별진단의 문제를 재고 했다.
2) 70년대 들어서면서 감별 진단의 문제 자체가 상대화 된다.
3) 현대 라캉학파에서 감별 진단적 접근과 비 감별 진단적 접근이 병존한다.
맺으며..
그러나 우리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정신증이 발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살아가는데 아무 영향이 없으나 어떤 측면에서만 정신증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광인인지 아닌지’도 의심스러워 하며 살았다. 정신분석을 시작한 계기도 ‘혹시 내가 이미 미쳐있거나, 미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이끌었으며, 끊임없이 나는 미쳤거나, 미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증거를 모두 찾기 위해 애써왔다. 결론적으로 이 책으로 나의 정신을 감별한 결과는 ‘나는 미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의심의 증상’에서 오는 주이상스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다. 지금도 가끔 예기치 않은 망상들이 종종 침투하지만, 변증법적 대화(?)를 통해 망상을 케어한다.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 신경증이나 정신증을 구별하는 기준과 근거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정신은 규격화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수 밖에 없다. 수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용기이자 갱신이다. 또한 궁극적으로 신경증과 정신증을 감별하는 이유는 정신증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좀 더 잘 돌보고 함께 잘 살아기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발병되지 않은 이들은 발현되지 않도록 어떻게 조심스럽게 그들을 대할 것인가를 배우고, 그들의 망상 및 온간 증상들은 고통을 국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이해하기 위한 공부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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