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성을 구성하는 성분 속에 이후의 삶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신경증적 징후의 동인들이 들어 있다고 가정한다.”
정신분석은 개인의 서사를 돌아보게 한다. 기억나지 않는 유년 시절을 재구성하기도 하고, 은밀한 유아시절의 환상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것들이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임상에서 밝혀진 것은 어린시절에 구조화된 일종의 반복이 평생을 N차의 버전으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혹시 이 것은 프로이트라는 대타자의 고정관념에 무의식적으로 내 인생을 끼워 맞춘 것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은 오히려 ‘부인’된 진실일 것이다.
한스 아버지가 한스의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스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질문하고 일련의 과정이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유아기 자녀의 ‘성생활’에 대해 딱히 기억이 나는 것이 없다. 유아 성욕에 대해 혹시 무시하거나, 거북살스러워 기억에서도 지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기억 나는 것은 다른 책보다 ‘why라는 청소년 과학만화책의 사춘기와 성편’이 너덜너덜 진 것을 보고 성적 호기심을 지대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생각해 보면 성교라든가, 출산에 대해서는 거의 나에게 묻지 않고, 'why'만 줄기차게 보았다. 반면 어린시절 나는 집요하게 엄마에게 애매모호한 부분을 말하도록 강요하여 엄마를 당황 시키기를 즐겼던 기억도 있다. 유아의 성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현대에 와서는 달라질까? 미디어가 유아의 성욕의 일부를 제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신분석 임상에서의 절정은 ‘근본환상’이 드러나는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정신분석 상담에서는 모르겠지만, 라깡 정신분석에서는 ‘근본환상’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근본환상은 망각했던 것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가족로맨스의 원형이 무의식 속에 어떻게 좌표를 찍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근본환상은 대부분 성적이다. 최초의 억압이 성적이기 때문이다. 개인 분석 임상에서 ‘근본환상’에 도달했다고 간주한 지점에서, 프로이트라는 대타자의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은 결과는 아닐까 의심했다. 그런데, 한스 사례를 보니, 성인이 된 한스가 기억도 못하는 ‘꼬마 난봉꾼’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꼬마 난봉꾼이였는지도 모른다.
정성스런 관찰과 더불어 다분히 ‘프로이트적 편견의 포로’인 한스 아빠의 몰아가는 질문은 살짝 거슬린다. 그런데, <아빠가 죽으면 내가 아빠가 될텐데>라는 한스의 말을 듣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확인한 한스 아빠는 내심 쾌재를 불렀을 듯하다. 프로이트 선생님에게 바칠 선물을 한스가 주었으니 말이다.
프로이트는 한스의 공포증의 원인을 “우연한 체험”으로 보았다. <외상>과 <내상>의 결합. 어떤 은유인가. 프로이트는 말이 애초에 한스의 애정의 대상이였던 점. 아버지를 닮은 프리츨이 말이 놀이를 하다가 쓰러졌던 사고, 임신한 엄마의 출산 콤플렉스가 결합되어 공포증이 발병한 것으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말이 자신을 물려고 한다>는 말은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과 자위행위에 대한 죄책감으로 해석했다. 프로이트는 한스의 억압을 아버지에 대한 적대, 엄마에 대한 가학적 충동의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공포증이 배태되었다고 보았다. “한스의 공포증은 특히 그의 엄마를 향한 모호한 충동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이라고 보았다. 말이 성적 충동을 표상한다고도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표상을 억압하였기에 공포의 상징으로 전치된 것이다. 공포는 진짜 공포가 아니라, 성적 충동을 은폐하기 위한 도구이다.
한스는 성적인 관심이 지대했다. 그러한 성적 조숙이 지적인 조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성적 관심을 지적 탐구로 전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진술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프로이트는 한스가 이러한 관심을 억압 없이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죄책감 대신에 ‘공포증’이 과감히 드러났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증은 정신분석을 통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의식화를 통해 그것이 사라졌다고 본 것이다.
프로이트는 “어린아이의 교육이 <질병> 발생의 요소로서 우리가 방금 언급한 소질에 대해 좋던 나쁘던 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 교육이 일종의 거세가 되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볼 때, 프로이트는 억압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병리적, 신경증적 정보를 필수 불가결한 정보로서 교사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프로이트 이론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대한 피상적인 오해도 많지만, 무의식에 대한 개념은 적어도 신경과학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고 믿는다.
(20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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